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진행된‘개그콘서트’ 카메라 리허설. 모자를 눌러쓴 김석현 PD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대 바로 앞 객석에 앉아 출연자들의 연기와 동선을 챙겼다. 연습 때보다 만족스럽지 않은 코너는 출연자와 함께 콘티를 고민했고, 재미있는 코너는 좀 더 큰 웃음을 이끌어 내기 위해 막바지 점검을 잊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봉숭아 학당’ 코너를 마지막으로 세 시간 가까운 리허설이 끝나자 출연자들은 ‘개그콘서트’의 터줏대감인 이태선 밴드가 연주하는 ‘석별의 정’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이내 흥겨운 리듬의 ‘잘 있어요’로 바뀌었고, 무대 뒤에서는 케이크가 등장했다. 모든 출연자가 무대에 올라 김 PD와 함께 사진도 찍고 헹가래도 쳤다. 이날은 2000년 조연출로 ‘개그콘서트’와 인연을 맺은 후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김 PD가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한 날이었다.
깜짝 선물에 뭉클한 김 PD는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고 나서 눈물을 훔쳐냈다. “너무 고마워요. 좀 더 잘 대해줄 걸 하는 마음도 있고요.” 김 PD는 1997년 입사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개그콘서트’와 함께 했다. 막상 프로그램을 떠나려니 섭섭한 마음이 크지만, “다른 프로그램도 해 봐야 하지 않겠냐”며 스스로 이별을 결정했다. 김 PD는 퀴즈 프로그램 ‘1대 100’을 맡을 예정이다.
출연자 가운데 맏형인 개그맨 김준호는 “그는 수요일에 녹화 끝나고 목요일에 모이면, 최악의 코너를 기분 상하게 지적하는 게 아니라 화이트보드에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다”며 “작가실에 코너별로 상종가나 보합같이 주가표를 붙여놓은 것도, NG 낸 사람에게 벌금을 걷어 제일 웃긴 사람에게 주는 것도 김 PD의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개그맨 김재욱은 김 PD의 장점으로 “아무리 인기가 좋더라도 코너가 묵은지가 되지 않도록 전성기에 끝내는 결단력”을 꼽았다. 그가 ‘개그콘서트’를 떠나는 것도 아마 박수칠 때 떠나고픈 심정일 터. 아이디어를 짠 신인 대신 가장 웃길 수 있는 고참에게 배역을 맡기는 냉철함, 될성부른 신인들을 과감하게 중용하는 용병술도 개그 프로그램의 수난 시대에 ‘개그콘서트’를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이다.
‘개그콘서트’의 지휘봉은 이 프로그램의 원년 멤버이자 ‘스폰지’‘뮤직뱅크’ 등을 연출한 서수민 PD가 이어받는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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