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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정치자금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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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정치자금을 위한 변명

입력
2010.11.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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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일간지에서 정치자금을 고전과 포르노에 빗댄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고전이란 '누구나 다 읽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다. 반대로 포르노는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는 척하지만 사실은 거의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칼럼은 일반 대중에게 정치자금은 '고전' 같은 것이고, 정치인에게는 '포르노'같다고 했다.

대중은 정치자금에 대해 잘 아는 듯 엄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비판하지만 사실은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정치인은 정치자금에 대해 너무나 잘 알지만 꺼내놓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여서 대중은 정치자금을 포르노처럼 역겹게 생각하고, 정치인은 고전처럼 귀하게 여긴단다.

청목회 수사 지지여론 높아

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후원금 검찰 수사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새삼 그 칼럼의 비유가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형평을 잃은 과도한 수사이며 입법권 유린이라고 강력 반발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최근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청목회 후원금에 대한 검찰수사는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응답이 53.7%로, '형평을 잃은 과도한 수사'(24.7%)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정치인과 정치자금에 엄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반 국민들의 냉소적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요즘 논란 속에 방영 중인 정치드라마 '대물'의 영향도 있을 법하다. 공교롭게도 부패의 화신과도 같은 정당대표와 그의 비리를 밝혀내려는 한 젊은 검사가 외롭게 싸우는 장면의 방영이 검찰의 청목회 수사가 본격화하는 시기와 겹쳤다. 시청자들의 분노가 어디로 쏠렸을지는 자명하다. 여야 정치권의 강력한 반발에도 검찰이 국회의원 후원회사무실 압수수색에 이어 소환에 불응한 후원회 관계자들을 체포하는 등 '씩씩하게' 나가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받은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인들이 이런 식으로 속절없이 부정한 집단으로 몰리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국회의원들은 과거에 비해 돈 씀씀이 부담을 상당히 덜었다. 그러나 돈이 들어오는 입구도 좁아져 여전히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선거가 없는 해는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공식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의 정치적 신념과 노선을 지지해서, 또는 순수하게 정치발전을 위해 후원금을 내는 개인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물론 학연ㆍ지연ㆍ혈연 등을 포함해 대인관계가 넓어 비교적 쉽게 목표를 채우는 의원들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 산하기관이나 이익단체 또는 기업 등에서 갖가지 편법을 통해 제공하는 후원금이 없으면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는 의원들이 다수다.

정기국회에 앞서 열리는 후원회가 성황을 이루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모금되는 후원금은 위법과 적법성의 경계가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순진하고 요란한 청목회의 후원금 제공 방식은 쉽게 눈에 띄었을 뿐, 본질에서는 다른 기관이나 단체의 후원금 제공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치현실ㆍ범법 사이 균형은

검찰은 청목회 측에 입법을 대가로 먼저 후원금을 요구한 정황을 중시한다고 하나 해당 의원들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의 1차 표적이 되고 있는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나 강기정 의원은 지역구 기반과 인적 관계가 탄탄해 선거가 없었던 2009년 1억5,000만원의 후원금 모금을 위해 대표적 서민의 한 유형인 청원경찰의 '코 묻은 돈'에 먼저 손을 벌릴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미 말릴 수 없을 만큼 속도가 붙어버린 검찰 수사다. 정치자금에 관한 한 위법과 적법의 좁은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정치인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정치 현실을 외면하고 무리한 프레임을 적용하면 후유증도 작지 않을 것이다. '고전'과 '포르노'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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