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5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3개월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시도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해 온 핵무기의 확산을 멈추는 것을 넘어, ‘핵 없는 세계’의 구상을 밝힌 것이다. 그는 당시 연설에서 “어떤 사람들은 핵무기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같은 패배주의가 최대의 적”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 같은 자신감은 올해 4월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신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으로 이어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6일 이번 주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될 예정인 나토 문서를 입수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핵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 두 가지 측면에서 급속히 가라앉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럽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 핵 무기를 철수시킨다는 계획은 이번 나토 문서에서 사라졌다. 냉전의 산물인, 약 200개에 달하는 미국의 B-61 핵폭탄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 제거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여전히 핵 무기가 나토 전략의 핵심으로 남게 된 것이다. 핵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던 미국의 입장이 바뀌게 된 연유에 대해 미국은 확실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이와 함께 미국과 러시아의 핵 감축 협상도 중간 선거를 거치며 힘든 국면을 맞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미러 협정에 대해 공화당의 상원 지도자들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협정은 양국이 보유한 장거리 핵 탄두 수를 각각 현재 2,200개에서 1,550개로 줄이고, 지상 및 해상배치 미사일은 현재 1,600기에서 800기로 각각 감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중간 선거에서 가까스로 과반을 유지했지만 협정 비준에 상원 100명 가운데 6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내년 1월 새 의회가 구성되기 전까지 ‘레임덕 세션’에서 이를 처리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협정 비준이 내년까지 연기되면 사실상 사문화되기가 쉽다는 것이 정치 분석가들의 전망이다. 이번 중간선거를 기화로 상원에서의 민주당 영향력이 점점 더 약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중동 평화협상이나 이란 핵 문제에 있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핵 감축 문제에서도 힘을 잃는다면 이는 오바마 정권의 외교 정책 전반을 어둡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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