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악마성과 관능, 쾌락과 퇴폐.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룰루’는 21세기에 어울리는 현대성 혹은 엽기성을 온축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출연진과 독일 스태프의 협업으로 ‘룰루’의 국내 초연 기록 수립과 함께 논쟁의 중심에 선다.
1937년 초연된 이 작품은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 룰루와,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 간의 유희를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15일 열린 제작발표회는 기대를 모았던 ‘룰루’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뜯겨지는 현장이었다.
지독히 양면적인 작품이다. 자정이 되면 그녀는 몸을 판다. 결혼 거부는 당시의 흐트러진 성 풍속을 상징한다. 그녀의 정부는 그녀를 딴 남자에게 소개시켜 관계를 맺게 하는데, 그들은 모두 기괴한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상황은 12음 기법이란 난해한 문법의 음악으로 표출된다. ‘어린이와 마법사’ ‘아랑’ 등 이 시대와 조응하는 오페라를 잇달아 선보여온 국립오페라단의 새 선택이다.
제작발표회장에서 이소영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2008년 부임 때부터 염두에 두고 준비해 왔다”며 “오페라는 물론 사회를 보는 눈까지 바꾼 이 작품의 무대화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에 이를 소화할 가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이 “국내 유일의 룰루 가수”로 소개한 소프라노 박은주(44)씨가 주인공이다.
박씨는 “벨칸토 오페라는 시종일관 같은 캐릭터여서 하루면 분석이 끝나지만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성격이 변하는 룰루는 분석에만 열 달이 걸렸다”며 국내 초연자로서 내면적 부담감을 내비쳤다. 그는 “‘룰루’는 매우 섬세하고 미묘한 오페라”라며 “몸살 앓을 정도로 집중력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독일 브레머하펜 시립극장에서 룰루 역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독일의 여성 연출자 크리스티나 부스는 “고아인 룰루는 뿌리는 없지만 날개는 있는 이상한 여인”이라며 “날개가 부러져도 사람을 끄는 매력만은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룰루는 다양한 직업과 연령의 남자들을 빨아들이는 일종의 항성”이라며 “무대 한가운데 큰 나무를 두고 둘레에 장치한 회전 무대는 그녀를 둘러싼 뭇 남자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독일, 스위스 등지의 오페라 무대는 룰루 재발견 붐이 일고 있다”고 소개하며 “복잡하고도 섬세한 무대지만 한국 음악인들 덕에 날개를 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룰루의 사랑을 받는 유일한 남자 쇤 박사, 그녀를 이용하다 끝내 살해하는 잭 더 리퍼 등 극단적인 두 가지 역을 맡은 바리톤 사무엘 윤은 이 오페라의 난해성을 상징한다. 현대 오페라 전문 가수이기도 한 그는 “너무 힘든 음악이지만 재미있는 연극 한 편으로 간주해도 얻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난해한 12음 기법에 의해 섬세하게 작곡된 음 구조물은 듣는 이에게 집중력을 요한다. 그만큼 팀프앙상블의 반주에 많은 기대가 모아진다. 2007년 정은숙 예술감독 당시 국내 초연됐던 베르크의 ‘보체크’ 무대에서 현의 섬세한 조율로 감동을 선사했던 단체다. 25~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2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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