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승리한 현대그룹은 환호를 불렀지만, 시장은 냉담하기만 했다. ▦너무 비싼 값을 써낸 것은 아닌지 ▦과연 이 돈을 현대그룹이 감당 가능할 지 ▦대우건설을 삼켰다가 결국 그룹자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지, 시장에선 계속 의구심이 나왔다. 이른바 ‘과식(過食)형 M&A’의 후유증,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선 끊이질 않았다.
일단 주가부터 그랬다. 현대건설과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이날 현대건설은 전날보다 14.91% 떨어진 6만2,200원의 하한가로 장을 마쳤다. 현대상선(-14.95%) 현대엘리베이터(-14.87%) 현대증권(-12.59%) 등 현대계열사들도 가격제한폭 혹은 그 근처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현대그룹 컨소시엄에 재무적 투자자(FI)로 나선 동양종금증권(-7.56%)조차 크게 하락했다. 반면 인수전에서 패배한 현대차 측은 이날 코스피지수가 0.77% 빠지는 가운데서도 현대차(2.55%)와 기아차(0.40%)가 오르고 현대모비스(-0.71%)도 선방했다.
사실 현대그룹이 비싼 입찰가격(5조5,000억원)을 베팅한 것은 시장의 시각에선 부정적 요인이다. 채권단 지분 34.88%를 5조5,000억원에 인수한다면 주당 14만1,460원을 쳐주는 셈인데, 전날 종가 기준으로 무려 94%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진 것. 시장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 등의 지분가치, 서산농장 등을 감안해 현대건설의 가치를 따진다 해도, 현대그룹이 제시한 입찰가는 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인수대금을 마련하려면 4조원 안팎의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한다.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로지엠 등 주력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1조2,000억원이고, 유상증자로 5,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현대증권도 5,500억원 정도 지원할 수 있다. 나머지는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FI를 끌어들이는 등 외부서 조달해야 하는데, 증권업계에서는 연간 2,000억원 이상 이자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대우증권 송흥익 선임연구원은 “막대한 인수자금으로 현대그룹의 재무구조가 악화하면, 현대건설도 경영에 부담이 커지고 성장성도 훼손될 수 있다”며 “양쪽 다 기업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그룹 측은 이 같은 시장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현대그룹 진정호 전략기획본부 상무는 “인수가격은 현대건설에 맞는 적정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오랫동안 준비했고, 앞으로 주가도 진정될 것으로 본다”고 반박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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