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1시 자유로 서울방향 장항IC를 조금 못 간 군부대 초소 앞에 미니버스 한 대가 멈췄다. 장항습지를 체험하러 온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1동 통장들이었다. 민간인통제구역이라 이전까지 장항습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농어민 등으로 제한됐지만 고양시는 군부대와 협의해 올해 10월부터 사전에 신청한 시민에게 습지를 개방하고 있다. 장항습지는 신곡수중보에서 일산대교까지 7.6km 구간으로, 갯벌을 포함한 면적은 7.49㎢다.
과거 장항습지 자리에 있었던 사미섬은 자유로 건설 당시 골재로 사라졌지만 1980년대 말 한강에 유람선을 띄우기 위해 신곡수중보가 생기며 지금의 습지로 거듭났다. 장항습지를 포함해 2006년 4월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한강하구는 둑이 없어 기수역(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다. 4대강 중 한강에만 하구둑이 건설되지 않은 것은 남북분단의 영향이다. 결국 의도하지 않았지만 수중보로 습지가 생기고, (분단으로)둑을 못 만들어 기수역이 만들어진 덕에 장항습지가 생태계의 보고로 남게 된 셈이다.
고양환경운동연합 소속 박춘영(40·여)씨의 안내로 철조망을 통과하자 어른 키만한 억새들이 옆으로 누워 길을 내줬다. 한반도 온난화를 증명하듯 여름 철새인 왜가리들은 쌀쌀한 바람이 몰아치는 11월의 창공을 갈랐다. 곳곳에는 고라니와 살쾡이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장항습지에는 100마리 이상의 고라니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영을 잘하는 고라니는 한 때 한강을 건너 김포까지 오갔지만 지금은 장항습지에서만 발견된다. 일행 뒤를 따르면 한 사병은 “이곳에서 고라니는 너무 흔한 새”이라고 귀띔했다.
국내 최대의 버드나무 군락지에서는 말똥게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장항습지에서는 멸종 위기 동물인 붉은발말똥게의 집단서식도 확인됐다. 말똥게는 기수역에만 사는 생물로 바다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씨는 “3대 보물이라고 부르는 버드나무 군락과 고라니, 말똥게를 비롯해 멸종위기 야생동물 21종과 천연기념물 11종이 서식한다”며 “유일한 자연하구인 장항습지의 보전가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습지를 가로지르자 탁 트인 한강하구가 나타났다. 마침 썰물이라 너른 갯벌이 드러났고, 강물 위에서는 두루미들의 군무가 펼쳐졌다. 이효옥(51·여)씨는 “고양에서만 평생을 살았는데 바로 옆에 야생의 자연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아이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건강한 습지로 거듭났지만 장항습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신곡수중보 이전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한강 너머 경기 김포시는 보 건설 뒤 침식작용이 강해졌다며 하류로의 이전을 요구하고, 경기도도 경인운하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보 이전을 주장한 바 있다. 반면 고양시는 보 이전 시 장항습지가 잠길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이다. 고양시가 장항습지를 개방한 것도 어찌 보면 보 이전 저지를 위한 선공인 셈이다. 올해 초 장항습지의 람사르습지 등록을 환경부에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아 장항습지를 개방하고, 자유로변 철조망이 철거되는 2012년부터는 탐조시설과 탐방로 등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양=글·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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