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연락 안 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에요. 망설이고 망설였는데… 마음 속의 고백이랄까. 노래를 하고픈 생각이 항상 나를 떠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장필순이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 콘서트를 연다. 2002년 6집 앨범 'Soony 6'를 낸 뒤 8년 만이다. 바람 많이 분 14일 저녁 서울 합정동의 지하 연습실로 장필순을 찾아갔다. 배달시켜 먹은 자장면 그릇을 비우고 '식후땡' 중인 그와 그의 오랜 벗들은 청안청락한 얼굴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조그만 곁방으로 담배 연기와 군만두의 기름내와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연주하는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멜로디가 정겹게 스며들었다.
제주도 생활에 대해 먼저 물었다. 장필순은 2005년 쉬러 내려간 섬에 터를 잡았다. 토박이들도 "그런 오지에 어떻게 사냐"고 말하는 깊숙한 곳에서 상추, 고추 심고 꽃나무 다듬고 개를 기르며 산다. 돌이켜보니 예전 그의 노랫말엔, 유독 떠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바람이 많았다. 그 바람을 이룬 것일까. 그는 "안단테의 삶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거기선 목장갑 하나 사려고 해도 하루를 통째로 잡아야 해요. 하루 두 번 있는 버스 타고 읍내 다녀오려면. 서울에서도 느리게 사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까 그것도 광랜의 속도였더라고요. 시계나 달력을 거의 안 보고 살아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음…. 옛날 우울함이 담겼던 자리에 뭔가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담기게 된 것 같아요.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시선이랄까."
장필순은 1983년 데뷔했다. 하지만 그가 그저 노래 잘 하는 가수에서 자기 세계를 가진 아티스트로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내고부터다. 다음 앨범('Soony 6')에 대한 반응은 더 뜨거웠다. 하지만 그 즈음 장필순은 음악 활동을 닫을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유는 음악에 대한 갈급이었다.
"고맙게도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내겐 별 새로움이 없었어요. 또 다른 뭔가가 없는 한, 하던 것에 더 연장선을 긋고 싶지 않았어요. 그다지 재미도 없고. 내가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무대에 서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건데… 힘들고 지치니까, 쉬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리고 8년의 시간이 지났다. 부족했던 걸 채웠을까. 장필순은 "대단한 변화는 없다"고 했다. 새로 쓴 곡들에 대해 물어도 "가끔 '띵까띵까' 해보는데 내가 기록을 잘 안 해서…"라며 웃었다.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가 그윽하고 편안하게 울렸다. 김현식 같은 "노래하다 떠난 이들"에 대한 얘기 도중, 그 마른 목소리는 잠깐 습기를 머금은 것 같기도 하다.
"나이 들고 보니까요,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심호흡 한 번 하고 나면 사실 별 거 아닌 게 너무 많잖아요. 즐거운 거, 화나는 거,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감정 같은 거… 그런 것도 격하게 오지 않고. 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고. 참, 무슨 얘기 했었죠? 아, 예, 새 앨범요. 한 번 마무리는 해보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음악을 떠나진 못할 테니까. 내가 구식이라, 싱글 같은 건 잘 모르고… 빠딱빠딱하게 손에 만져지는 앨범, 그걸 내야죠. 좀 기다려 보세요. 천천히."
장필순의 콘서트 타이틀은 '8년이 지난 지금'이다. 16~18일 서울 동숭동 소극장 '이다.'에서 열린다. 히트곡들과 드라마 '아일랜드' OST 등 무대에서 부르지 않았던 노래들, 지난해 낸 CCM(대중음악 스타일의 기독교 음악) 앨범 수록곡 등을 고루 선보인다. 그는 "낯선 음악 말고 장필순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반가운 인사 같은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 (02)762-0010.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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