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식물위원회'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했다.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1명이 잇따라 사퇴하더니 어제는 전문ㆍ자문ㆍ상담위원 등 61명이 집단 사퇴했다. 전체 외부 위촉 위원(160여 명)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상임위원 1명이 임명되긴 했지만 상임위는 물론 자문위원회 소집도 힘든 상황이어서 인권위 기능 마비가 불가피하다. 앞서 인권위는 사무총장의 사퇴와 인권 전문가인 별정직 공무원들의 잇따른 조직 이탈로 극심한 내홍을 겪어왔다. 인권위 조직과 기능 및 역할은 축소됐고, 인권 문제에 대해 제때 제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독립 기구로서의 권위가 훼손되고 위상도 추락했다. 그 논란의 중심에 현병철 위원장이 있다.
현 위원장은 법학자다. 인권위원장 취임 전까지 인권 관련 활동이나 연구 실적이 전무했다. 그 때문에 부적절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업무 수행에 걸림돌이 될 만큼 심각한 결격 사유는 아니라는 것이 우리 판단이었다. 인권 비전문가라도 위원회 체제인 인권위의 특성에 맞게 법학자로서의 양식을 발휘한다면 얼마든지 인권위를 잘 이끌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위원장의 행보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인권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독단적인 운영 방식으로 안팎에서 비난과 지탄을 자초했다.
인권 문제는 이념 차원을 넘어 모두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다. 따라서 최근 인권위의 파행을 단지 인권 이슈를 놓고 벌어진 보수ㆍ진보 진영의 충돌로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또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위험이 다분하다. 오히려 최근의 인권위 사태는 인권위원장으로서 인권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현 위원장의 철학 부재, 조직 수장으로서의 리더십 부재, 내ㆍ외부의 비판적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 소통의 부재가 초래한 측면이 강하다. 집단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를 다른 인사들로 메운다 한들 이런 인사가 인권위를 이끄는 한 인권위는 또 다른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 위원장의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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