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인 토마스 스트루스(56)가 한국을 찍었다. 유명 문화재와 미술관의 관람객들을 찍은 '미술관'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서울, 울산, 구미, 거제도, 설악산 등을 방문했다. 그가 포착한 한국의 풍경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촘촘하게 들어찬 고층 아파트,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의 행렬, 바닷가 모래밭의 철책선, 경주 불국사의 목련 등이다.
17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고 이 작품들을 선보이는 스트루스는 "한국 답사를 통해 기술과 욕망, 힘의 구조가 작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생성되는 현상에 호기심이 생겼고, 새 시리즈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받은 첫 인상은 밀도가 높은 건축물들이었습니다. 이런 속도로 계속 건축을 해나간다면 땅이 부족해서라도 20년 안에 남북 통일을 해야겠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죠."
이번 전시에는 육중한 잿빛 콘크리트 건물이 늘어선 평양 거리의 사진도 포함돼 있다. 2007년 5일간 작업을 위해 방북했던 스트루스는 "옛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새 것으로 대체되는 모습,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이상하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 독일인으로서 한국의 분단 현실에 동질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벽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사이즈가 크다. 특히 거제도 조선소의 거대한 철제 구조물과 그 주위에 엉킨 밧줄, 철심 등을 찍은 작품은 가로 3.5m, 세로 2.8m나 되는 크기가 사진의 내용을 한층 부각시킨다. 그는 "거제도에서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끝없이 무엇인가를 짓고자 하는 욕망을 조절할 수 있을까 등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 독일의 막스 플랑크 천문학연구소 등을 피사체로 삼으며 인류의 욕망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켜나가고 있다. 지난 6월 스위스에서 시작해 독일, 영국, 포르투갈 등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순회 회고전에도 조선소와 아파트 공사 현장 등 한국의 사진들이 중요한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스트루스는 앞으로 한국에서 가족 사진 작업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시절 자신의 스승이자 독일 회화의 거장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가족 사진 등 인물 사진도 찍어왔다. "거리에서 사진관에 걸린 가족 사진을 많이 봤어요. 한국의 가족 사진에서는 하나의 흠도 없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가 느껴져 흥미로웠습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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