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총선 압승은 미얀마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승리의 기억일 것이다. 당시 무력으로 총선 결과를 뒤엎고 헌법을 정지 시킨 미얀마 군부는 그 동안 어떻게 하면 군부 체제를 합법적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영속화시킬 것인지를 연구해왔다. 그 결과 2008년 신헌법이 제정됐고 이에 따라 지난 7일 총선이 치러졌다. 선거 후 90일 안에 하원을 열고, 그 뒤 15일 안에 상ㆍ하원 합동회의를 개최해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한다.
겉보기에는 민정체제로의 이양으로 보이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국가평화발전평의회 의장을 맡아 사실상 국가원수로 군림해온 탄 슈웨(77) 장군은 군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만들었으며, 이 당은 이번 총선에서 압승했다. 1962년 쿠데타 이후 48년만에 출범하는 '허울뿐인' 민정도 사실상 군복만 벗은 군인들이 장악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신헌법은 상·하 양원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도록 하고 있다. 또 수감된 적이 있는 사람은 선거에 출마할 수 없어, 민주인사들 대부분의 정치진출은 원천봉쇄 돼 있다. 수치 여사는 영국인 남편과 아들을 두고 있는 점 때문에도 선거 출마가 불가능하다.
미얀마 국민들이 '더 레이디(The Lady)'라고 우러르는 수치 여사지만, 이처럼 미얀마의 신헌법과 정치구조는 개인이 깨부수기 어려운 장벽이다. 더구나 탄 슈웨 장군은 수치 여사의 이름을 듣는 것 조차 참지 못할 정도로 그를 혐오하며, '더 레이디'라는 명칭도 수치 여사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기 위해 군부들이 먼저 사용한 표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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