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호흡기 달고 있는 네 모습에 속이 상하(는)구나. 잘 견디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지 모르겠어. 네가 찡그리는 얼굴을 보면 엄마는 하루 종일 우울하고, 깜빡이는 눈을 보면 애처로워 눈물이 난단다. 그래도 잘 견뎌낼 거야 그렇지? 엄마는 (너에게) 해 줄 게 너무 많단다.'(2001년 9월 21일 일기 중)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인제대상계백병원 17층 대강당. 무대 위에 오른 안민희(38)씨는 눈물을 겨우 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9년 전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딸 지원이(9)를 위한 편지이자, 혼잣말로 다짐하는 자신과의 약속. 일기의 제목은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였다.
태어났을 때 지원이의 몸무게는 760g, 미숙아(임신 후 34주 이내 태어난 신생아) 중에서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아니 생(生)보다는 사(死)에 가까운 초미숙아였다. 안씨는 그런 아기를 어쩌지 못한 채 바라만 봐야 했다. 그렇게 지원이는 넉 달을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안씨는 "살아만 달라는 기도밖에 할 게 없었다"고 했다.
이날 안씨의 눈물은 그의 것만은 아니었다. 안씨와 같은 경험을 가진 스물 다섯 가족이 병원에서 마련한 '신생아 중환자실 홈커밍데이' 자리에 모여 함께 울었다. 27주3일 만에 560g으로 태어난 박성원(6)군 가족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저도 당시에는 포기를 했죠, 그래서 지금도 미안해요."
눈물을 보인 부모 옆 아이들은 그런 큰 고비를 겪었다고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900g으로 태어난 손가영(5)양은 관객석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신 춤을 선사했고, 31주 만에 태어난 박예나 예본(3)양 쌍둥이 자매는 노래(곰 세 마리)를 부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영이 엄마는 "그 때 생각하면 지금은 참 행복해요. 튼튼하잖아요"라고 웃었다.
물론 아이들은 부모의 아픔 못지않은 고통을 견뎌야 했다. 최명재 소아과 과장은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은 심장과 폐 기능 등 상태에 따라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거나, 미숙아실로 보내진다. 신체의 미성숙으로 인해 각종 질환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24시간 의료진의 보호 아래 체중 혈압 체온 등 검사가 매일 이뤄지고, 부모와의 면회 역시 하루 단 30분뿐일 정도로 보호 받는다.
생사의 고비는 보통 네 단계로 닥쳐온다. 태어난 순간 심장의 기능이 멈추는 것이 첫 번째, 다음이 폐포(허파꽈리)수축 기능 위축에 따른 호흡곤란이다. 폐포 기능 활성화 물질은 임신 후 34주부터 성숙되기 때문에 그 전에 태어나는 미숙아는 활성화 주사를 맞아야 한다.
공기 중 세균이 폐로 침투해 피가 썩는 폐혈증 역시 조심해야 한다. 몸무게가 2.2㎏ 이상으로 늘 때까지는 감염 위험이 크다는 게 병원의 설명이다. 의료진과 부모를 가장 긴장시키는 건 괴사성장염이다. 음식물의 균이 소화과정에서 장 점막을 감염시켜 '갑작스레' 장에 구멍을 내는 병이다. 최 과장은 "모든 고비를 넘기고 스스로 숨을 쉬고 음식을 소화할 수 있어야 비로소 퇴원할 수 있다. 평균 3,4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안씨의 일기 낭독이 끝나자 분위기는 금세 반전됐다. 병원 관계자는 "오늘 행사는 아픔을 떠올리자는 자리가 아니다. 작게 태어났지만 잘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취지이자, 관심을 부탁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역시나 지원이가 엄마에 이어 무대에 올라 피아노 연주 실력을 뽐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장기를 자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부모들은 한껏 웃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미숙아는 총 5,130명이었으며, 1.5㎏미만 저체중아는 2,304명에 달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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