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서울을 배경으로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시들을 한데 묶은 시 선집 (실천문학 발행)가 출간됐다.
1970년 분신 자살한 노동운동가 전태일 40주기(11월 13일)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기획위원(문학평론가 박수연 이성혁 고명철 고봉준 오창은, 시인 손택수)들이 노동시로 분류한 작품 중 시인 138명의 시 320여 편을 추리고, 이 시들을 발표 시기별로 식민지시대 및 해방기, 1960~70년대, 1980년대 이후로 나눠 실었다. 이성혁 기획위원은 “본래 한국에서 노동시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의 노동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가 쏟아졌던 1980년대에 구체화됐지만, 이 책에서는 시대와 무관하게 노동자 입장에 서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사유를 펼친 시라면 모두 노동시로 봤다”고 설명했다.
제1부에 수록된 1900~1950년대의 시는 카프(KAPFㆍ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회원을 비롯한 신경향파 시인들이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창작한 이른바 ‘프로시’들이 주종을 이룬다. 김석송의 ‘그대들은 나이다’, 김해강의 ‘용광로’,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백철의 ‘날은 추워오는데’ 등 프로시는 생계를 위해 고향 농촌을 떠나 경성에 온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2부에서 다루는 1960~70년대는 군사정권의 저항문학 탄압으로 노동시가 양적으로 현저히 줄어든 때다. 노동자를 도탄에 빠뜨리는 사회구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다는 점은 이 시기 노동시들의 한계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반면 박노해, 백무산 등 노동자 출신이 노동시 창작의 전면에 나섰던 1980년대와 달리 주로 직업 시인들에 의해 노동시가 쓰여지면서 빼어난 시적 완성도를 보인 점은 이 시기 노동시의 미덕이다. 신동엽의 ‘종로 5가’, 김지하의 ‘서울길’, 김광규의 ‘쓰레기 치는 사람들’, 이성부의 ‘난지도’, 황명걸의 ‘무악재’ 등이 대표작이다.
계급이 인간을 규정하는 결정적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은 1980년대 노동시의 질적ㆍ양적 성장을 불렀다. 박노해, 박영근, 김해자, 최종천 등 서울의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시인들은 구체적 체험과 날카로운 사회의식으로 노동시를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시켰다. 이후 이주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하종오 시인, 순도 높은 서정으로 노동시의 갱신을 시도하는 송경동 시인 등으로 한국 노동시는 면면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제3부에서 진단한다.
이훈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