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나 중풍 환자가 기거하던 여성 전용 노인요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27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12일 오전 4시24분께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2층짜리 인덕노인요양센터에서 1층 사무실 분전반의 스파크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김희순(71)씨 등 70∼90대 할머니 10명이 숨지고 전분순(95)씨 등 17명이 부상했다. 부상은 가벼운 연기 흡입에 따른 것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화재 규모는 심각하진 않아 30여분 만에 진화됐고 전소된 넓이도 16.5㎡ 정도였다. 그러나 사망자 10명은 거동이 불편한 70대 이상 중증 환자들이라 모두 건물 출입구 인근에서 있었으면서도 화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 6명은 1층 출입구와 5㎙ 떨어진 1호실에서 나왔고, 나머지 4명도 출입구에서 10㎙ 떨어진 2호실에서 발견됐다. 근무자는 1층과 2층에 1명씩 배치돼 있어 할머니들을 대피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화재 발생 시각이 할머니들이 잠이 든 새벽 시간대라는 점도 악재였다. 화재를 신고한 이 요양센터 관리원(63ㆍ여)은 "잠을 자던 중 매캐한 냄새가 나서 일어나 보니 사무실에서 불길이 솟고 있었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당시 여러 단계(관리원_옆의 포스코기술연구소 경비실_포스코 자위소방서)를 거쳐 남부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된 것도 인명피해를 키웠다.
사고 발생 요양센터는 건물 연면적 387㎡에 불과해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돼 있지 않는 등 기본적 화재 대응 장비조차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법은 400㎡ 이상의 건물에 대해서만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건물에 사용된 건축자재의 방염ㆍ절연성도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화재 발생 건물은 요양센터로 용도 변경되기 전 동사무소 건물로 사용됐었기 때문에 요양시설로서 적합하게 리모델링됐는지도 의문이다. 치매나 중풍 1~2등급의 70대 이상 중증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복지시설인 점을 감안할 때 화재 발생 시 긴급 피난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관의 화재점검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건물은 2009년 10월 소방서로부터 특별소방안전점검을 받았을 당시 5개 등급 가운데 평균이 C등급을 받았으나 별다른 문제점을 드러나지 않았다.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전국 요양시설에 대한 일제점검이 실시됐으나 이 요양센터는 점검에서 제외됐다.
인구 고령화로 노인요양원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법ㆍ제도적 장치가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어 이 같은 참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실제 올 한 해만도 전국 11곳의 노인요양원에서 화재가 발생할 정도로 화재 취약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노인요양원은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면서 2007년 말 647개소에서 지난해 말 2,627개소로 급증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거주하는 시설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정부 관련 부처와 협의해 화재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화재와 관련해 "사후 대책이나 수습 등의 부분을 김황식 총리가 잘 챙기라"고 지시했다.
포항=전준호기자 jhjun@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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