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리뷰/ 마술사 이은결의 ‘The illusion’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리뷰/ 마술사 이은결의 ‘The illusion’

입력
2010.11.12 12:06
0 0

마술쇼에서 어떤 마술이 나오는지 미리 알려주는 건 엄청난 스포일러다. 마술은 아이템 자체가 궁금증을 자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일부터 시작된 마술사 이은결의 ‘더 일루션(The illusion)’이 보여주는 마술의 종류는 열거해야만 한다. 3년 만에 대중 앞에 선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은결은 자신의 무대 이름을 마술계에서 대형마술을 가리키는 ‘일루젼’과 차별화하기 위해 일부러 ‘일루션’으로 읽어주기를 바랐다.

칼로 자른 미녀가 도로 살아나고, 눈 앞에서 사라진다. 공중에 떠오르기도 하고 불구덩이에서도 옷자락조차 그을리지 않는다. 흔히 봐온 마술이라 식상한 느낌은 있지만 눈 앞에서 펼쳐지니 신기하기는 하다. 이렇게 기존 마술을 한꺼번에 보여준 뒤 그는 말한다. “미녀 많이 잘라봤고, 공중 부양은 허경영씨가 저보다 잘해요. 기대하고 오신 ‘뻔한 마술’은 안 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은결의 마술이 시작된다. 그는 테크닉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마술을 지향한다. 케냐에서 보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림자로 옮겨놓는다. 단지 두 손을 바삐 놀릴 뿐이지만 무대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보는 듯한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어린 시절 한 번쯤 상상해보았을, 눈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풍경도 이은결의 손을 거치면 현실이 된다.

잠시나마 마음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동심을 꺼내본다. 너무 커버린 자신의 모습, 꿈을 생각할 시간조차 잃어버린 일상 등을 인지하는 순간, 가슴은 먹먹해진다. 이쯤되면 눈이 흩날리는 단순한 특수효과에도 박수가 터져 나온다. 기계적 속임수에서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환상으로 마술의 정의를 바꿔놓으려는 이은결의 바람이 객석까지 통한 듯하다.

앞서 그가 ‘뻔한 마술’을 열거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추상화를 그리기 전 피카소도 사실적인 그림을 빼어나게 그리지 않았던가. ‘스펙터클한 마술을 못하니까 그림자, 영상으로 환상술사 운운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사전에 풀어주려는 것이다.

연말에 잘 어울리는 공연이다. 대극장에서 혼자 관객들과 소통하는 데도 2시간이 어색하지 않은 건 오롯이 그의 존재감 때문이다. 다만 ‘환상술사’를 자처하는 그가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입으로 먼저 뱉어버리는 점 등은 외려 환상을 덜어낸다. 노상에서 벌어지는 야바위가 아니라 완성도를 기해야 하는 쇼이기에, 매끄럽게 정제할 필요가 있다. 진정 원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라야 나올 것 같은 행복한 그의 표정은 백 마디 말보다 힘이 셌다. 이은결은 그걸 알까.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 12월 4일까지. (02)501-7888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