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밴 도렌 지음ㆍ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발행ㆍ924쪽ㆍ3만5,000원
“인류의 역사는 곧 인간 지식의 진보와 발전의 역사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편집자로 유명한 찰스 밴 도렌(85)의 역작 는 이 전제에서 출발한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지식을 찾아’(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문명이 시작된 순간부터 현대까지 지식의 발전 과정을 서술한 다음 미래의 지식을 전망한다. 인류의 진보를 이끈 주요 발견과 발명, 이론과 개념을 망라하고, 그것을 탄생시킨 역사적 맥락과 시대의 풍경을 읽는다. 그 긴 역사에 우뚝 선 거인들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다. 예수,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다빈치, 셰익스피어, 콜럼버스, 갈릴레이, 데카르트, 뉴턴, 다윈, 괴테,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피카소 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철학 종교 과학 예술 경제 정치 등 거의 전 분야를 다룬다.
책은 이집트와 인도, 중국, 아스테카와 잉카에 이르는 여러 고대 제국의 지식을 살피는 제1장 ‘고대인의 지혜’로 출발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르네상스, 근대, 현대까지 차례로 주파한다. 마지막 제 15장은 미래의 지식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반려 컴퓨터, 생각하는 기계, 우주 개발에 대한 기대 등을 다룬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한 연대기에 그치지 않고 지식의 본질을 묻는 데 있다. 꾸준히 발전하는 동시에 꾸준히 수정되는 것, 후대까지 이어지지만 오류로 판명돼 사라지기도 하는 것, 그리하여 성취와 좌절이 교차하며 쌓이는 것. 저자에게 지식은 그렇게 역동적인 것이다.
하나의 지식이 탄생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서술하는 동안 저자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르네상스 시대를 다룰 때는 전인적 교양인의 표상을 묻고, 그런 가치를 소홀히 다루는 현대의 교육을 비판한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 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란 무엇인가부터 묻는다. 20세기를 지배한 정치체제와 이념들을 살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도 그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영구적일 수 있을지 묻고,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원서는 1991년 나왔다. 저자는 그때 65세, 평생에 걸친 독서와 사고와 대화를 바탕으로 썼다. 20년 전의 책이라 한계는 있다. 예컨대 지식의 긴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충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과 디지털혁명은 당시만 해도 짐작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광속으로 움직이는 요즘 같은 지식폭발 시대에도 여전히 가치있는 책이다. 정보의 홍수가 오히려 혼란과 어둠으로 가득찬 ‘암흑의 도서관’(남미 소설가 보르헤스의 표현이다)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비춰볼 거울이 될 만하다.
이 책의 또다른 한계는 철저히 서양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인류의 지식 발전에 동양이나 이슬람이 남긴 거대한 자취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 등 동양은 고대문명을 다룬 제1장에, 몽골제국은 13세기에 유럽 한복판까지 쳐들어와 문명을 위협한 ‘야만인’으로 아주 짧게 등장할 뿐이다. 서양 중세가 이슬람문명에 진 빚은, 고대 그리스의 지적 성취를 전해준 사상가 이븐 루시드(아베로이스)를 언급하는 정도에 그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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