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이'쎄올(Seoul)'을 외쳤다.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결정됐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장면이었다. 이후 88올림픽 개최를 통해 한국의 위상이 많이 올라가고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불과 3년 뒤인 1991년 파리에 갔을 때 한국은 여전히 유럽인들에게 생소한 나라였다. 짧은 프랑스어로 길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일본 사람이냐"는 것이었다."한국이나 서울을 아느냐"고 물었으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미국 연수 시절에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한국보다 북한의 인지도가 더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했는데도 북핵 문제 등으로 미국에서는 오히려 북한이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아이 학교에서도 "북한 사람이냐"는 질문이 많았다고 했다. 스포츠축제의 경우 개최국에 대한 관심 보다는 참가국의 경기 결과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 서울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국 정상들이 만나 지구촌의 각종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은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 축제였지만 G20 정상회의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참가자 면면을 보면 세계 일류국가 혹은 기구의 지도자들, 세계 최고 기업의 CEO들이다. 논의되는 내용들도 일반인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정치와 경제의 큰 틀을 짜는 차원 높은 것들이다.
일각에서는 "G20 정상회의가 뭔데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서울시청 광장에 붉은 인파들이 넘쳐도 불만이 없던 국민들이다. 또 실제 우리 피부에 닿는 경제적 직접 효과는 미미한데 간접 효과가 수십조원에 이른다는'뻥튀기'조사에 대한 지적도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등이 오히려"시골이나 변두리 지역의 한국인들이 자신의 나라가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보도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G20 정상회의를 통해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강도가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연구소들이나 무역협회가 주장하는 수십조원대의 직ㆍ간접 효과가 터무니 없는 과장이라 할지라도, 이번 G20 정상회의는 최소한 우리 국격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세계 유수의 언론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G20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위치에 올라온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앞다투어 보도하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우리 땅에 병력을 주둔시킨 미국 등 세계 열강들에 온전히 둘러싸여 있다. 올해로 꼭 100년째가 되는 한일 강제병합이나 60년 전 발생한 한국전쟁이나 모두 이들 열강 간의 합종연횡의 영역다툼에 희생당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늘 잠재적인 위협인 북한이라는 변수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신개념 전쟁인'환율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자칫 우리 국가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이 주도하는 이번 정상회의에 바람이 있다면 내실 있는 결과물을 도출, 한반도 주변은 물론 지구촌이 안정을 다지는 것이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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