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시에서 자동차부품업체 계양정밀을 운영하는 사업가 정병기(62)씨가 작지만 값진 미술상을 제정했다. 한국의 젊은 미디어아티스트를 뽑아 주는 미디어아트코리아(MAK) 어워드다.
11일 첫 번째 수상자로 작가 임민욱(42)씨를 배출한 이 상의 상금은 500만원. 대기업 산하 재단 등이 주는 다른 미술상에 비하면 적은 액수다. 하지만 이 상은 수상자의 작품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미술관에 기증하고,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아티스트북도 제작해 국내외 미술기관과 평론가에게 배포하는 등 장기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미술 컬렉터로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과 교류해온 정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멜리사 추 아시아소사이어티미술관장으로부터 한국 유명 작가의 작품 기증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정씨는 “권위 있는 현대미술 기관인 만큼 이미 알려진 작가보다는 젊은 작가의 작품이 소장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순한 기증보다는 상 형식을 취해 그 의미를 더하고 싶었다”고 상을 만든 이유를 말했다. 그 뜻에 따라 지난 4월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상 운영위원회가 구성됐고, 국내외 심사위원 6명이 임씨를 첫 수상자로 뽑은 것이다.
그간 아시아소사이어티미술관에 소장된 한국 작품은 백남준의 작품이 유일했다. 멜리사 추 관장은 “정씨는 현대미술에 높은 안목을 지녔을 뿐 아니라, 투자가 아니라 지원이라는 관점에서 미술을 바라보는 희귀한 컬렉터”라며 “이번 수상작 기증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품을 구입하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외국에서 미술사 책을 보니 미디어아트를 소개할 때 정작 그 창시자인 백남준 선생의 이름을 빼놓은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며 “백남준 선생의 뒤를 잇는 후배 미디어아트 작가가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한국 예술계가 뒷받침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미디어아트 분야를 후원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정씨는 40여 년 전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 등에서 전통 공예품을 사모으며 컬렉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그는 “월급쟁이 시절 돈이 없어 할부로 하나 둘 미술품을 사모았다”며 “골프나 술을 하지 않는 대신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상선 CEO를 지낸 뒤 1994년 현재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간 수집한 미술품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소장품의 개수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시대나 양식 등 주제에 맞춰 작품을 모읍니다. 그러면 쉽게 팔 수가 없어요. 하나를 팔면 컬렉션 전체가 허물어지거든요. 작품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것입니다. 예술품을 주식처럼 쉽게 사고 판다면 너무 살벌하지 않나요.”
글ㆍ사진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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