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두 나라 정상이 거듭 정상회담(11일)을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의 데드라인으로 밝혀 온 만큼, 어떤 식으로든 이날까지는 협상이 타결될 거라는 시각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정상회의 하루 전인 10일부터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하더니, 결국 협상 타결 무산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협상을 진행한 통상당국은 결렬 이유에 대해 입을 꼭 닫고 있다. 과연 무엇이 걸림돌이었을까.
하나. 쇠고기
만약 협상이 단 한 가지 이유로 결렬이 됐다면 그건 쇠고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쇠고기는 우리 정부로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 쇠고기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가 2008년 ‘촛불 사태’에 버금가는 엄청난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한ㆍ미 FTA와 쇠고기는 별개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를 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측이 쇠고기와 자동차를 줄곧 쟁점화하고 나섰지만, 쇠고기는 자동차를 얻어내기 위한 압박용 카드일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했다. 우리 정부도 불과 이틀 전인 9일까지도 “쇠고기 문제는 협의가 이뤄진 바 없을 정도”라고 밝혀, 쇠고기는 협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이 막판에 쇠고기 추가 개방 및 검역조건 완화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면서, 협상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쇠고기 개방을 확대해야 미국 의회에서 FTA가 비준될 수 있다”고 요구했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FTA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쇠고기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없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측이 줄곧 쇠고기에 큰 관심을 보여온 게 사실이지만 막판에 이빨을 드러내면서 협상이 어그러졌다”고 말했다.
둘. 자동차
자동차 부문은 상당 부분 조율이 이뤄졌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측. ▦국내 판매대수 1만대 이하 제작사(미국 완성차회사)에 대해 환경기준을 완화해주고 ▦수입부품에 대한 관세환급 상한선을 한ㆍ유럽연합(EU) FTA와 동등하게 5%로 제한하며 ▦미국에 수출되는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철폐 기한을 연장하는 등의 미국측 요구를 우리 정부가 대부분 수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역시 최종 타결에는 실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측의 상당 폭 양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기대수준이 워낙 높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1일 백악관 동행취지 기자들과 가진 배경설명을 통해 “나흘간의 통상장관회담에서 상당 부분을 자동차 문제 조율에 할애했다”고 밝혀 자동차 문제가 막판까지 걸림돌로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매우 생산적인 토론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동차 산업을 위해 시장접근의 불균형을 반드시 해소해야만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포드의 반대가 협상실패에 중대한 영향을 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에서 협상의 최대 반대자는 포드자동차”라며 “협상 결과가 발표되기 전 마지막 시간까지 한국이 미국 자동차에 대해 장벽을 세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협상실패 소식을 전하면서 포드의 협정 반대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협정문은 점 하나도 바꾸지 않겠다”던 우리 정부의 공언과 달리, 일부 사안의 경우 미국측 요구를 수용할 경우 협정문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도 협상 실패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셋. 국내적 한계
시한을 정해놓고 막판 배수의 진을 친 채 몰아치기 협상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한국도 미국도 협상의 재량폭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자동차업계와 축산업자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의회에 발목이 잡혀 있었고, ‘촛불’공포를 가진 우리 정부 역시 시종 굴욕협상에 대한 국민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이번 협상은 보통의 협상과는 달랐다”고 말해, 미국도 한국도 끝까지 완강했음을 전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비록 타결엔 실패했지만 양국 사이엔 ‘무언의 교감’이 형성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통상전문가는 “서둘러 끝낼 경우 국내적 비판여론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아는 만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모양새를 위해 무리한 타결을 시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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