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태(41)씨가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것은 본심 진출 작품을 공개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로만 따져도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해에도 그의 단편소설 ‘이미테이션’이 본심에 올랐다. 이 소설은 양친 모두 한국인인데도 혼혈인을 닮은 외모 탓에 성장기에 수난을 겪다가 아예 외국인 행세를 하며 사는 영어 강사를 주인공으로, 한국사회의 순혈주의와 영어 광풍을 재치있게 풍자한 작품이다.
올해로 등단 16년을 맞은 전씨는 지금까지 단편소설집 3권과 장편소설 1권을 낸 것이 전부다. 결코 많지 않은 작품으로도 오랫동안 꾸준히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이력에서, 그가 작품 한 편마다 들이는 공을 짐작하게 된다. 천안의 집과 안성의 작업실을 오가며 창작에 매진하고 있는 그에게 예심 결과를 알리다가 문득 그가 2006년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올랐을 때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담되니까 주목 좀 그만해주십시오. 주목 받든 못 받든 열심히 쓸 테니까요.” 이 뼈 있는 농담을,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는 틀림없이 평소처럼 특유의 온화하고 느릿한 말투로 했을 것이다.
그의 올해 본심 진출작인 단편 ‘소녀들은 자라고 오빠들은 즐겁다’는 외딴 시골마을에 사는 주인공 소년과 외지에서 온 동갑내기 소녀의 풋사랑이 서사의 토대를 이루는 성장소설이다. 날렵한 이야기 솜씨로 국가ㆍ자본에 포획된 개인의 의식 등 묵직한 주제를 주로 다뤄온 그의 최근작들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다. 공간 배경으로 볼 때 이 소설은 오히려 고향 농촌의 현실을 해학과 풍자에 실어 핍진하게 그렸던 전씨의 첫 소설집 과 맞닿아 있는 듯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의 세계가 걸쭉한 입담이 살아 있는 이야기의 향연이라면, ‘소녀들은 자라고…’는 유려하지만 감상적이지 않은 문장들이 헤집고 있는 소년의 상처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작품이다.
소년의 부모는 걸핏하면 싸운다. 평범한 부부싸움 수준이 아니라 아버지는 도끼를 들고, 어머니는 농약병으로 자살 소동을 벌이는 요란한 다툼이다. 부모가 싸울 때마다 소년은 숲으로 꼭꼭 숨는데, 그럴 때마다 외아들 걱정에 온 숲을 뒤지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한 번도 그를 찾아나서지 않는다. 무심한 어머니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년은 엉뚱하고도 위험한 짓을 벌이고 결국 그 때문에 아버지는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는다. 설상가상, 죄책감에 빠진 소년에게 소녀는 이사 간다며 글썽한 눈으로 이별을 고한다.
전남 고흥의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전씨는 “을 쓸 당시 내게 고향은 안온하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고향에서의 내 삶이 결코 행복했던 것이 아님을 깨닫고 혼란스러워졌다”며 “‘소녀들은 자라고…’는 내 안의 상처들을 소설을 통해 정면으로 대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쓴 첫 작품이고 얼마간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말했다. 외견상 소년의 비극적 성장기를 애틋하게 그린 소설이지만 실은 작가가 문학적, 개인적 난제에 맞서 치르고 있는 고투가 숨어 있는 작품인 셈이다. 지난해 소설집 를 펴낸 이후 발표한 단편소설이 벌써 10편에 이를 만큼 어느때보다 활발히 창작하고 있음에도 그가 “지금 안정된 상태에서 쓰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고백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문학은 상처 위에 피는 꽃’이라는 명제는 작가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소설집 를 통해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의식ㆍ무의식을 지배하는 국가와 자본의 정체를 폭로했던 전씨는 이제 몸, 욕망, 상처라는 근본적이고도 절박한 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의 상처가 깊어지니 그의 소설이 더욱 눈부시다.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 당선 ▦소설집 (1999) (2005) (2009), 장편소설 (2005), 산문집 (2010) ▦신동엽창작상, 채만식문학상, 무영문학상 등 수상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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