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여론조사기관 의 주요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이 꼴찌를 했다. 6개월 전 같은 조사에서는 국회가 최하위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다. 올 여름 국가권익위의 청렴도조사에서도 역시 국회와 검찰이 바닥권의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의 국가신뢰수준 조사에서 한국정치인은 72개국 중 최하위라는 기막힌 결과가 나왔다(물론 언론 신뢰도도 대수로운 건 아니다).
청목회 수사로 정치권과 검찰이 팽팽히 맞서 있다. 결과에 따라 한 쪽은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므로 오가는 말들에 날이 서 있다. 원래 말 장사가 본업인 정치권의 발언수위는 거의 극한이다. 정치유린, 폭거, 말살, 검찰쿠데타… 등등, 그야말로 장사밑천을 다 털어 넣었다. 언뜻 원칙론으로 들리는 검찰의 "의연한 대처" 역시 강한 불쾌감과 역정의 표현이다.
그들이 함께 자초한 불신과 냉소
그런데 정작 주위에선 누가 옳은지 굳이 시시비비를 따지려 들지 않는다. 천안함이나 다른 대형 사건 때와는 다른 반응이다. 짜증과 냉소만 느껴진다. 인터넷에서도 상투적 댓글들만 무성할 뿐 논쟁다운 논쟁은 딱히 보기 어렵다. 이유는 앞서의 조사대로다. 어느 쪽도 믿음이 가지 않고, 편 들기도 싫은 때문이다. 이러면 결국 이도 저도 다 아닌 양비론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런 심정으로 보자면 우선 청목회 로비는 뭐 대단한 권력형 부정부패도 아니다. 과거 기업에서 후원금을 쪼개 받아 의법처리된 의원도 있었지만 이번 것은 서민단체가 최소한의 처우 개선을 위해 쌈짓돈을 십시일반 갹출한 서툴고 눈물겨운 로비사건이다. 실정법 위반이지만 검찰이 온 정치권을 상대로 팔을 걷어 붙일 만한 거악(巨惡)은 아니다.
더 내려갈 곳도 없는 검찰의 위신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건 '살아 있는 권력'과의 싸움이다. 이미 죽을 쑬 대로 쑨 천신일, 대포폰 등의 사건들이다. 그 뿐인가. 대기업 관련 사건들은 지지부진한데 껍데기만 남은 중소그룹 오너만 일찌감치 구속됐다. 이런 판에 "검사는 수사로 말한다"고 하면 바로 코미디가 된다. 검찰 스스로도 혐의를 인정한 앞 사건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한 청목회 의원 11명을 몽땅 사법처리한다 해도 검찰의 권위 회복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정성과 균형감을 인정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모처럼 여야가 하나 된 모습을 보였다. 사사건건 정파적 이해로 싸우는 모습이 일상인 데 비해 아주 이례적이다. 평소 국가 주요 현안을 다룰 때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하긴 이번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 적이 있기는 했다. 세비를 올릴 때나, 얼마 전 퇴직의원에게 평생 120만원씩 월수당을 지급하는 법률을 통과시킬 때는 그랬다.
이번 청원경찰법 개정 때도 상임위 상정 후 단 3개월 만에 입법절차를 끝냈다. 로비가 없었어도 그렇게들 관심과 열의를 가졌을까? 진짜 서민생활에 직결되는 민생법안들은 쓸데없는 정쟁에 밀려 몇 년씩 묵혀졌다 폐기되는 일들이 다반사인데 "서민 위한 입법활동에 이 무슨?"하는 항변은 낯 간지럽다. 국민 기억력을 금붕어 수준쯤으로 낮춰보는 건방진 태도다.
법과 정치영역이 엉킨 난장판
법과 정치는 국가운영체계의 양대 축이다. 법은 최상위의 규범이지만, 법을 만들고 행사하는 건 정치다. 각각의 영역이 존중돼야 서로 물려 돌아가며 원활한 국가운영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경우 걸핏하면 법으로 정치를 규율하려 들고, 정치는 법을 그들의 논리로 다루려는 일이 벌어진다. 이게 그래도 일부에라도 먹혀 드는 이유 또한 같다. 누가 당하든 고소한, 모두 꼴 보기 싫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어디까지가 법이고, 정치인지 모르게 뒤엉킨 난장판이 된다.
그러니 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검찰은 먼저 청목회보다 몇 배 더 중요한 천신일, 대포폰 등의 사건을 엄정하고도 깔끔하게 처리하고, 국회의원들은 실정법 위반에 대한 법적 조치를 마땅히 감수하는 것이 맞다. 그게 양쪽 다 최소한의 연민이라도 받는 길이다. 이번 사안에선 양비론이 답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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