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결혼한 김익(35)-리정애(35) 부부는 9일 외교통상부 여권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는 ‘조선’국적의 재일동포 리씨의 한국 체류 연장 요청을 해둔 터였고, 전화는 그 답신이었다. 담당 직원은 3개월 여행증명서를 발급하겠다고 통보해왔고,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존에 받은 증명서가 12일로 만료돼 결혼 한 달 만에 이별해야 할 뻔 했거든요. 최악의 경우 불법체류도 생각했지만요. 일단 3개월을 벌었지만 그 후에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리씨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강제이주 당한 할아버지가 그곳에 정착한 뒤 태어난 재일동포 3세다. 재일동포는 일본에서 ‘조선’ 국적의 외국인으로 생활하다 1945년 광복 후 대부분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선택했는데, 일부는 통일된 조국의 국적을 갖겠다며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리씨와 가족도 조선 국적을 유지했다. 문제는 조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국적법상 이들은 무국적자 대우를 받는 점이다. 그간 리씨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재외동포에게 발급되는 3개월짜리 여행증명서로 한국을 왕래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에게는 한국 거주는 물론 취업도 할 수 있는 비자를 받지만, 조선 국적의 리씨에게는 그 조차 해당되지 않는다. “저는 같은 민족인데도 매번 이런 대접을 받아요.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리씨는 2004년 친척을 만나러 한국에 처음 왔다. 우리말로 강의하는 일본 내 민족학교인 조선대를 나온 그는 언제 어디서나 한국말을 사용할 수 있어 매년 한 두 차례 한국에 머물렀다. 2006년에는 고려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글을 배웠고, 2007년부터 2년간 월간 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바로 이 만화가 두 사람의 오작교가 됐다. 고려대 재학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김씨는 2006년 말 접속이 차단된 친북 사이트의 북한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이때 즐겨보던 에서 리씨의 만화를 눈 여겨 봤다고 한다. 2007년 12월 출소한 김씨는 특히 연재물에서 리씨가 ‘운동권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쓴 걸 기억하고 있다가 어렵사리 리씨를 만났다.
“첫인상요?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험악하게 생겨서 무서웠어요. 그렇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웃음)”(리씨)
“만화에서 보던 발랄하고 청순한 소녀 이미지를 예상했는데 털 모자에 목도리를 똘똘 둘러 칙칙하더라고요.” (김씨)
말은 그리 했지만 리씨는, 휴대전화 네 자리를 ‘1945(광복한 해를 상징)’로 쓰며 통일운동에 열심인 김씨가 마음에 들었고, 김씨 역시 리씨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로도 국제전화로 사랑을 키웠다.
지난 달 결혼한 두 사람은 6박7일간 공주 무령왕릉, 전주 한옥마을, 진안 마이산, 합천 해인사, 천안 독립기념관 등 한국의 역사, 문화,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여행했다. 리씨는 “조선이 충무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통영 세병관이 제일 좋았어요. 제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여행증명서가 허락한 시한은 내년 2월 11일. 비록 시한부 신혼생활이지만, 리씨는 “한국에서 남편과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남들처럼 함께 살게 해주세요.”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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