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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와의 전쟁] <5> 방재 선진국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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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와의 전쟁] <5> 방재 선진국을 찾아서

입력
2010.11.1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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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도쿄 신주쿠구 요쓰야 소방서장 다지마 쇼이치

“주택 화재경보기 설치 의무화 이후 도쿄의 화재 발생 건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1,300만 인구가 밀집한 일본 도쿄(東京) 중심부 신주쿠(新宿)구 요쓰야(四谷) 일대 소방안전을 책임지는 다지마 쇼이치(田島松一ㆍ51) 요쓰야 소방서장은 경보기 보급이 불의의 화재사고 피해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보기 의무화로 사망자 줄어

일본이 일반주택까지 화재경보기(화재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한 것은 2004년 소방법 개정 때부터. 2년 뒤 시행에 들어간 이 법에 따라 늦어도 2011년 5월까지 모든 주택에 자동화재경보기를 설치해야 한다. 도쿄의 경우 2006년 6월부터 각 침실과 거실, 부엌에 화재경보기를 의무 설치도록 했고, 지금까지 보급률은 약 80%에 이른다. 경보기 설치 의무화 이후 도쿄의 주택화재 사망자는 보급 직전인 2005년 102명에서 1년 만에 78명으로 줄었다. 지난해도 화재 사망자가 87명으로 역대 평균을 밑돌고 있다.

“(경보기) 보급과 함께 주택 화재 사망자와 화재 피해 면적이 줄었습니다. 경보기 소리를 듣고 거주자뿐 아니라 근처를 지나던 사람이나 이웃 주민이 119로 신고하거나 근처 소화기로 불을 끈다든지 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경보기 보급은 주택화재 예방을 위해 (일본 소방관청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정책입니다.”

화재경보기 설치가 의무이긴 하지만 설치하지 않았다고 벌금을 낸다거나 처벌을 받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의 경우 싼 제품이어도 개당 2,000엔(2만7,000원) 안팎인 경보기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는 생활보호대상자, 6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 세대에 구입 금액을 보조하기도 하고, 지역 주민이 좀 더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도록 공동구매를 대행하기도 한다.

잦은 지진 등으로 일찌감치 체계적인 소방정책을 확립한 ‘방재 선진국’이면서도 일본 역시 최근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고층빌딩에 대한 화재 예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층아파트의 경우 불이 필요한 곳에서는 전기렌지 사용을 우선토록 하고, 가스제품일 경우는 자동소화기능 장착이 의무화 돼 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베란다를 통해 피난하도록 세대 간에는 쉽게 부술 수 있는 칸막이를 설치하고, 베란다에서 아랫층으로 비상철제 계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층의 소방 작업을 돕기 위해 7층 이상 건물에는 소방호스의 물을 끌어 올리는 ‘부스터 펌프’도 설치해야 한다.

의용소방대가 큰 역할

일본의 소방활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용소방대인 ‘소방단’의 역할이다.

다지마 서장은 “일본에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소방 행정이 현재 체계를 갖출 즈음인 1947년부터 민간 소방단이 조직돼 운영됐다”며 “소방단원들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이기 때문에 지역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 소방대와 함께 화재에 대처하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도쿄 23구에는 58개 소방단이 조직돼 1만5,000명의 주민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유사시 화재 진압이나 재난 구조활동에 나서고 있다.

다지마 서장은 “소방단원 중 불도저 등 중기를 조작할 수 있는 인력이나 의사ㆍ간호사 등은 특수기능단원으로 분류돼 큰 재난이 나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9월 1일이 방재의 날이다.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발생일에 맞춰 정한 이날을 포함한 방재주간에는 일본 전국에서 다양한 재난 예방 및 대처 훈련과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의 주축도 소방단원이다.

다지마 서장은 “재난이 발생하면 먼저 행정에 기대기 쉽지만 자신과 가족, 이웃의 인명과 재산은 스스로 지킨다는 ‘자주(自主) 방재’ 사고 방식이 일본에는 뿌리 깊다”며 “자신의 생명은 우선 자신이 지키고, 다음에 이웃과 손잡고 대처하며, 마지막으로 소방, 경찰 등 행정에 도움을 구한다는 3단계 체계로 재난에 대처한다”고 말했다.

다지마 서장은 “재난이 발생하면 자신의 힘만으로 대처할 수 없게 마련”이라며 “소방교육뿐 아니라 주민이 일상적으로 유대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지마 서장을 만난 지난달 20일까지 요쓰야소방서는 무려 11년이 넘는 4,250일 동안 ‘화재 사망자 0’를 기록했다. 체계적인 소방대 조직과 소방단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의 끈끈한 유대가 밑거름이다.

도쿄=글ㆍ사진 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 선진국 방재활동

선진국에서도 경보형화재감지기는 화재 피해에 신속하고 효과적이고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설비로 인식하고 있다. 이미 많은 방재 선진국들이 설치를 의무화해 시행하는 방재 정책의 핵심이다.

일본에서는 2004년 6월 소방법 개정을 통해 경보기 설치 의무화 제도를 공포했다. 올해까지 주택화재경보기 설치율을 90% 수준까지 끌어올려 사실상 모든 주택의 경보기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일본 소방당국은 이를 통해 주택 화재 사망자 수를 50%까지 감소시키는 획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2006년 6월부터 시행된 일본 소방법 제9조에 따라 일본 전역의 신축주택을 대상으로 감지기 설치가 의무화됐다. 기존주택에 대해서는 법 부칙에 경과조치를 두어 시정청(우리나라 시ㆍ군ㆍ읍ㆍ면에 해당)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일본에서 주택 내 침실이나 계단, 천정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토록 하고 일부 시정촌은 부엌까지 설치 의무화 규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미국은 1977년 화재경보기 보급률이 22%일 때 사망자가 5,865명 발생했으나 2002년 보급률이 94%로 높아지면서 사망자가 2,670명으로 55%나 감소했다. 25년간 감지기 보급이 늘어나면서 주택 화재 사망자가 매년 128명씩 줄어드는 추세다.

영국도 1988년 화재감지기 보급률이 8%일 때 732명이던 사망자가 2001년 보급률 81%에 이르자 사망자가 483명으로 34% 감소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경보기설치 의무화제 도입을 주장한 이범래 의원(한나라당)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NFPA72, national Fire Alarm Code'(화재경보코드)에 따라 모든 세대용 주거시설 내에 연기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호주도 1990년 2월부터 가정용 연기감지기(Smoke alarm)를 모든 주거용 건물의 소유주에게 각 층에 한 개 이상 설치토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캐나다는 온타리오법에 의거해 모든 주택에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다. 토론토의 경우가 경보기를 설치하지 않을 경우 최고 2만5,000달러의 벌금과 1년의 실형을 받는다.

영국은 1991년 건축법(Building Regulations)에 모든 신설 주택에 감지기 설치를 제도화하면서 2004년 5월까지 전체 주택의 약 80%에 연기감지기가 설치됐다. 영국의 소방차는 주택 화재의 5분 1 정도만 출동하는데 주택에 대부분 연기감지기가 있어 화재가 확대되기 전에 초기 진화가 이뤄진 덕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작년 서울에선…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화재 발생 건수는 6,318건에 달한다. 이로 인한 사망자가 37명, 부상자는 220명이나 된다. 화재는 시민들의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어 재산 피해도 막대하다. 지난해에만 시민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면 모은 155억원의 재산이 시꺼먼 연기와 함께 날아갔다.

문제는 화재 발생 건수나 피해 규모가 아직 획기적으로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2006년 5,000여건 안팎이던 화재 건수가 2007~2009년 6,000여건 수준으로 늘어난 채 정체 상태에 있다.

서울 시내 화재 발생 추이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강남구가 지난해 367건으로, 가장 화재 발생이 많았다. 이어 노원구(335건) 강서구(309건) 송파구(303건) 중랑구(299건) 순이다. 반대로 가장 화재가 적게 발생한 자치구는 금천구(147건) 은평구(179건) 구로구(182건) 마포구(192건) 용산구(203건) 순이었다.

화재가 난 장소를 분석하면 강남구의 경우 아파트단지는 물론 음식점, 비즈니스 사무실이 60여건으로 높은 분포를 나타냈다. 특히 음식점 화재(60건)는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았다. 대규모 공동주택 밀집지역인 노원구는 111건이 아파트단지에서만 발생해 서울 최고였다. 강서구에서도 80건이나 아파트 화재가 일어났다.

반면 중랑구(70건) 동대문구(61건) 광진구(60건) 등에서는 단독주택의 화재 발생이 눈에 띄게 많았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시골에선 불이 나면 집 한 채 타지만 가구가 밀집한 도시에서는 큰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올해 사망 사고 중 90%가 넘게 다세대주택 등에서 일어나 '화재경보기 달아주기', '무료 소화기 보급' 등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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