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 흰 모자를 쓰고 신발에도 흰 토시를 껴 신었다. 자동문을 지나 공장 복도로 들어서자 달콤쌉싸름한 향이 후각을 부드럽게 자극한다. 복도 양쪽 벽엔 멋드러진 인삼 작품사진들이 걸려 있고, 6년근 인삼을 세척하는 곳에서부터 완제품의 성분을 정밀 분석하는 실험실까지 어느 곳에서도 여느 '공장'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7,000톤의 6년근 홍삼으로 700여개 홍삼 관련 제품을 만드는 공장인데도 말이다.
8일 오후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위치한 한국인삼공사의 고려인삼창을 찾았다. 18만5,100㎡(약 5만6,000평) 부지에 생산시설만 7만2,700㎡(약 2만2,000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홍삼 제조공장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품 선물로 인기가 높은 '정관장 홍삼'을 생산하는 곳이다.
인삼창은 이맘 때가 가장 바쁘다. 다른 때는 홍삼으로 뿌리삼 제품이나 농축액 등을 만들기만 하지만, 9~11월에는 경기ㆍ강원ㆍ전남 등 각지에서 수매한 6년근 인삼을 씻고 증기로 찐 뒤 말려 붉은 빛이 도는 홍삼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동시에 밟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홍삼을 만들고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는 첨단공법과 전통기법이 어우러져 있다. 복도 한켠을 돌아가니 대형 세삼기 4대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밭에서 캐낸 인삼을 씻어내는 곳이다. "예전엔 칫솔을 사용해 뿌리 사이의 흙먼지를 닦아냈지만 지금은 세삼기에서 고압의 청정수를 분사한 뒤 초음파 세척기를 활용해 미세먼지까지 씻어낸다"(인삼창 관계자)고 한다.
씻어낸 인삼을 증기로 쪄내기 직전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크기에 따라 인삼을 찌는 시간과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분류작업을 거쳐야 한다. 화끈거리는 열기 때문에 은백색의 증삼기 가까이에 가기가 어렵다. 크기별로 쪄내는 온도와 시간은 '특급 기밀사항'이란다.
쪄낸 홍삼을 말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 건조실 천장은 자연채광을 위해 간유리로 만들었고, 천정 옆문은 항상 열어놓아 바람길이 되도록 했다. 여기서 보름간 말리고 나면 뿌리삼과 농축액제품, 음료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원료로서의 홍삼이 완성된다.
다음은 홍삼을 외형과 조직, 중량에 따라 분류한다. 특히 조직검사의 경우 단면을 절단하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암실에서 빛을 쏘여 진행하는데, 이 작업만큼은 30년 이상 일해온 14명의 베테랑이 모든 홍삼 한뿌리 한뿌리를 직접 수작업으로 살펴본다. "홍삼은 정성과 노력을 먹고 큰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계약재배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완제품이 만들어진 후에도 철저한 성분 검사가 이뤄진다. 공장 내에서만 중금속 오염 여부 재확인을 비롯, 11단계의 검사를 거친다. 마침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파우치 제품들이 검은 천에 쌓여 손수레에 실린 채 복도 한 쪽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덕연구단지의 연구개발(R&D)본부는 고려인삼학회, 식품개발연구원 등과 공동연구도 진행한다. 지난해 R&D투자액만 연매출의 2%인 144억원에 달했다.
인삼공사는 1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가자들에게 홍삼정차ㆍ엑기스ㆍ젤리 등 정관장 제품을 선물로 제공할 예정이다. 정관장의 우수성을 알리면서 해외시장 개척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된 셈. 안희준 인삼공사 품질관리팀장은 "해외에서 정관장의 품질이 알려지면서 짝퉁까지 나오고 있지만 인삼 재배밭에서부터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해온 정관장의 땀과 노력을 흉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부여=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