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인 A(52)씨는 지난 9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통장사본과 현금 카드를 보내주면 1,000만원까지 대출가능’이라는 내용이었다.
딸의 결혼자금이 급했던 A씨는 곧바로 집 인근에서 김모(27)씨를 만나 통장사본 등을 건네줬다. “현금카드와 통장을 주면 자신의 회사에 직원으로 등록시켜서 은행으로부터 1,000만원을 대출해줄 수 있다”는 김씨의 말에 넘어갔던 것이다.김씨는 “곧 통장으로 돈을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그러던 중 A씨는 별안간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았다. 김씨는 전화금융사기범인 인모씨에게 A씨의 통장사본과 현금카드를 건넸고 사기범들은 이를 보이스피싱에 사용한 것이다.
서울 동작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신동석 경감은 “사기범들은 타인 명의의 통장에 보이스피싱으로 수천만원을 입금시키고 현금카드로 지방 등 한적한 시골에 가서 돈을 인출하는 수법을 사용한다”며 “A씨 사정이 딱하지만 전화금융사기범들에게 통장이나 현금카드 등을 넘겨주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서가 전화금융사기범들에게 통장과 현금카드 등을 양도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이는 모두 55명. 본의 아니게 사기범과 공범이 된 이들은 택시기사, 가정주부, 경비원, 무직자 등이 대부분으로 형편이 어려워 생활비를 마련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현금카드와 통장을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돼 있어 이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보게 됐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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