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TART(New Strategic Arms Reductions Treaty)’라는 조어는 지난 4월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서명한 ‘신(新) 전략무기감축협정’의 영문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이를 그냥 영어 단어로 읽으면 그 뜻은 ‘새로운 출발’이 된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전략 핵무기 감축을 둘러싸고 미러가 새로 합의한 것이 협정의 내용인 만큼 이름 하나는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협정 서명 이후 이미 7개월이 넘었는데도 양국의 국내 비준절차에 가로막혀 ‘새로운 출발’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신 협정이 대체하게 될 구 협정 즉, ‘START-Ⅰ’이 지난 해 12월말 효력을 잃은 이후부터 치면 ‘협정 부재’기간은 근 1년이 다돼 간다.
무엇보다 비준권을 갖고 있는 미국 상원 내 공화당의 반대가 근본적 걸림돌이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미국이 먼저 비준하면 언제라도 상응 조치를 취하겠다”는 식으로 책임을 미 측에 미루고 있는 상태여서 결국 미 상원의 비준이 관건인 셈이다. 공화당의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체계’구축 노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공화당 의원들은 전략 핵탄두 감축에 따른 전력손실을 메우려면 남은 핵무기의 개량과 현대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예산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New START’는 양국이 보유한 장거리 핵탄두 수를 각각 현재 2,200개에서 1,550개로 줄이고, 지상 및 해상배치 미사일은 현재 1,600기에서 800기로 각각 감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미 집권 민주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미 상원의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가까스로 과반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의석이 53석으로 줄었다. 협정의 비준에는 상원의원 총 100명 가운데 3분의 2, 즉 6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내년 1월 새 의회가 구성되기 전까지의 ‘레임덕 세션(15일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회기)’에서 비준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4일 각료회의에서 “핵 감축은 당파적 이슈가 아니라 미 안보에 관한 (초당적) 문제인 만큼 새 협정을 비준, 미국이 핵비확산에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러시아와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며 레임덕 세션에서의 표결을 촉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무튼 전체적인 맥락에서 ‘New START’는 ‘핵무기 없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상호불신에 기초하고 있다. 조기 비준을 바라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측이 그 필요성의 시급함을 “새 협정이 발효돼야 러시아의 핵무기 시스템과 핵 활동을 현장에서 사찰하고 감시할 수 있는데 현재 그것을 못하고 있다”는 데서 찾고 있는 것도 ‘불신’의 반영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핵무기 문제를 바라보는 미 공화당의 냉전적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들은 핵 우위 고수라는 패권적 가치를 위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런 저런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New START’의 진전을 위해 미 공화당에 동조 못할 보다 현실적 이유도 우리에겐 있다. 북한핵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비핵화만이 선택 가능한 대안이기에 그런 것이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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