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9> 사람과 환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9> 사람과 환경

입력
2010.11.09 06:57
0 0

‘문제 아동’이나 ‘비행 청소년’으로 낙인찍힌 학생들을 상담해보면 우리 청소년 주변에 온갖 유혹들이 얼마나 기승을 부리는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자극적인 유혹들에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손을 댔다가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정말 즐비하다. 일단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 뾰족한 수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문제가 되는 것은 중복에 빠진 청소년들을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비난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사정을 이해하고 도우려고 하기보다는 문제 행동의 주범이라는 낙인을 찍고 비난하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영국의 한 잡지기사를 보니 우리나라가 음란물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라고 한다. 또한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도박 중독자의 비율이 2010년 기준으로 6.1%로 나타났다. 영국의 1.9%(2007년 기준), 캐나다의 1.7%(2005년 기준)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각종 사행산업이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0.61%)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45%)에 비해 높다. 우리나라의 환경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유해한 것인지가 새삼 밝혀진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우리 청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릴 수 있겠는가. 감히 주장하건대 우리 청소년들은 무죄다. 단지 우리 사회의 혼탁한 성장 환경이 아이들을 공격하여 병들게 만들었을 뿐이다. 개인적인 잘못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근본적인 원인에는 눈을 감고 오직 원인의 발현인 사람만을 비난하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

가정을 직접 방문해 집안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특히 아이의 공부방을 확인해보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붙잡고 공부를 시키려고만 애를 쓰지만 공부할 수 분위기를 연출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아이의 학습 잠재력을 진심으로 믿고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로막거나 꺾지 않는, 오히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침대를 치우고 독서실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준 결과 아이가 놀랍게 달라지자 그동안 부작용만 실감해온 학부모들이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 했다. 공부하는 환경을 개선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100%퍼센트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정말 공부에 유리한 환경과 불리한 환경이 따로 있으며 환경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공부에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간단하다. 공부하게 만드는 환경이 좋은 환경이고 공부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 나쁜 환경이다. 사람의 두뇌는 보고 듣는 것에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극적인 유혹을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 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면 컴퓨터 화면이 보이고 책상 뒤에는 침대가 놓여 있거나 책꽂이 곳곳에 만화책이 보이는 환경이라면 공부를 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다.

아이의 의지로 환경의 영향력을 극복하라는 말과 같지만 그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의지를 가진 아이는 거의 없다. 반면에 어려서부터 공부습관이 잘 잡힌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해보면 차분한 분위기에 주로 책이 눈에 들어오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거실에는 대형TV 대신 책장에 책이 가득한 책장이 놓여 있고 아이 방도 독서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공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집에 오면 아이가 공부하는 꼴을 보기 어렵다는 말을 해본 부모라면 아이를 채근하기 전에 이처럼 우선 가정의 분위기와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공부는 가정 밖에서, 학교나 학원에서 주로 하지만 사실 가정이라는 공간과 환경에서 아이들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면 과언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장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환경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환경이 오염되면 마치 쉽게 병에 걸리는 것처럼 아이들은 공부라는 일보다는 자극적인 쾌락을 찾아 부모의 속을 썩이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짓만 일삼는 아이들을 미워하거나 야단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일으킨 주범은 바로 오염된 환경이기 때문이다.

배후에 숨어있는 환경의 영향력에 주목하자. 사람만의 문제로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킬 가능성만 높인다. 최소한 가정에서 부모만이라도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혹시라도 중독에 빠진 자녀가 있다면 비난하기를 멈추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오염된 환경이 원인이지 아이들의 모습은 결과에 불과하다. 희망은 아이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경 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을 탓하기 시작하면 실패하지만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면 성공한다.

비상교육공부연구소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