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린 소녀였다. 생김새로 보아 외국 소녀였다. 새벽시간 잠옷 차림으로 소녀는 빛이 쏟아지는 곳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 그림 속에 반드시 '오늘도 무사히'란 경구가 적혀 있었다. 어린 시절, 이발소 그림처럼 곳곳에 걸려 있었던 그림이었다.
집집마다 소원은 일 나가는 가장이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지금은 그 그림을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오늘도 무사히'란 기도가 집집이 간절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지금이 더욱 절실한지 모르겠다. 사건사고는 날마다, 더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웬만한 사고에는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 죽는 시시한 사고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수백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뉴스에만 눈이 가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한 해에 95만3,482건의 교통사고에 5,870명이 사망했다.
2009년에는 97만7,535건의 교통사고에 5,838명이 사망하고 149만8,344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차량들이 과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새벽부터 조카딸 아이가 잠옷 차림으로 오락게임을 하며 수십만 명을 총으로 죽이고 있다. 제 아비란 놈이 "오늘은 더 많이 죽여라!"고 격려하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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