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9일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 인민군 차수가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했다. 한국전쟁 이후 적대적으로 일관했던 북ㆍ미관계를 감안할 때 북한 군부 최고 실세이자 정권의 2인자였던 그의 방미는 일대 사건이었다. 4박5일에 걸친 일정 하나하나가 비상한 관심을 모았지만 인민군 정복 차림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하는 장면은 지구촌의 화제가 됐다. 양복 정장 차림으로 미 국무부를 방문한 그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건물 내에서 군복으로 갈아 입고 백악관행 승용차에 올랐다고 한다.
■ 그의 군복 깜짝쇼는 정전상태인 교전국 군사대표로서 상대국 원수를 만나는 모양을 연출함으로써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풀이됐다. 다음 날 발표된 북ㆍ미 공동코뮈니케에도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등이 주요 내용으로 명시됐다.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등 향후 일정도 제시됐다. 1999년 9월 '페리 프로세스'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정세 변화를 배경으로 북ㆍ미관계 근본적 개선, 즉 북ㆍ미관계 정상화 노력에 탄력이 붙게 된 것이다.
■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북ㆍ미 공동코뮈니케 발표 열흘 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북 미사일 문제 등 구체적인 의제를 조율하기는 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만료 시한에 쫓긴 데다 중동문제까지면서 겹치면서 더 이상 평양 방문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뒤이어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북ㆍ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보려는 북ㆍ미간의 타협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10년 전 북ㆍ미 협상 무대에서 활약했던 조명록이 6일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체제 공식 출범 때 국방위 제1부위원장에 선임돼 북한정권의 2인자 지위를 누려왔지만 지병 악화로 2007년부터는 대외활동을 거의 못했다. 하지만 그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후 김정일 정권이 대외협상을 통한 생존전략을 추구하던 시기의 한 주역이었음은 분명하다.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에서 최근 권력승계를 공식화한 김정은이 김정일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됐다. 성큼 다가온 김정은 시대에 북ㆍ미관계는 또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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