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가보셨습니까?”(최일구 앵커) “못 가봤습니다. 가보셨나 보죠?”(배현진 앵커) “저는 한 20년 전에 딱 한 번 가봤습니다. 전 외국 나가면 과묵해지거든요. 하하”(최 앵커)
7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내용의 일부다. 토크쇼 분위기의 부드러운 대화에 이어진 뉴스는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전광판들이 쌍방향 광고로 채워지고 있다는 소식. 이날 뉴스의 첫 꼭지와 두 번째 꼭지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시즌 1ㆍ2호 골을 잇달아 터뜨렸다는 소식에 할애됐고, 가장 길게 방송된 꼭지는 영화 ‘평양성’(이준익 감독) 촬영현장에서 전하는 ‘보조 출연자들의 하루 체험’ 소식(4분 13초)이었다. “등산 중에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데려다 키우고 싶을 때도 있는데요, 환경 전문 허무호 기자는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데려다 키우면 야생 동물의 생존이 허무해진다고 합니다”라는, 말장난에 가까운 앵커멘트도 있었다.
MBC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가 지난 6일부터 주말(토ㆍ일) 방송 시간을 오후 9시에서 8시로 옮겼다. 방송 40년 만에 시간을 앞당긴 것 외에 프로그램 포맷도 크게 손질했다. 기획보도와 현장뉴스를 늘리고, 중계차를 이용한 역동적인 리포트도 강화했다. 헤드라인 소개도 빠른 음성으로 간략히 뉴스를 전달하던 데서 벗어나 최일구 앵커가 스튜디오 안을 이동하며 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바꿨다. 이런 변화를 두고 신선하다는 반응, 한편에선 TV 저널리즘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MBC는 ‘뉴스데스크’의 변화를 큰 승부수로 보고 있는 듯하다. 방송 전 예고편을 만들어내보내고 기자간담회를 여는가 하면, 자사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 코너에 최일구 앵커를 출연시키는 등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례적으로 포털사이트와 무료신문에 광고도 했다. 연성화, 나아가 코믹화에 대한 우려를 무릅쓴 흥행 올인이다. 지난 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홍순관 주말뉴스 담당 부국장은 “드라마와 경쟁할 수 있는 시청률을 대차게 한 번 노려본다”고 말했다.
출발은 일단 성공적이다. 주말 저녁 KBS와 SBS 뉴스에 늘상 밀렸던 ‘뉴스데스크’는, 7일 8.1%(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의 시청률로 전 주에 비해 1.8% 포인트 상승하며 SBS ‘뉴스 8’을 0.2% 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아울러 ‘뉴스데스크’와 시간을 맞바꿔 9시에 방송된 주말 드라마 ‘글로리아’도 한자릿수에 머물던 시청률이 10.5%로 뛰어오르는 부수 효과를 거뒀다. 가벼워진 리포트에 대한 시청자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딱딱해서 관심 가지 않던 뉴스를 온 가족이 모여 웃으며 봤다”는 글들이 수북이 올랐고, 앵커의 개인 의견 남발 등을 지적하는 비판적인 글은 극소수에 그쳤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뉴스데스크’의 변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변화의 원인이 상업화에 있는 만큼, 말랑해진 ‘뉴스데스크’가 방송 저널리즘의 약화와 공영방송으로서 MBC의 정체성 퇴색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다. 앞서 KBS 2TV ‘뉴스타임’이 여성 더블 앵커를 내세우는 등 방송 뉴스 연성화 흐름은 사실 몇 해 전부터 감지됐다. 그러나 간판 뉴스인 ‘뉴스데스크’의 연성화는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마저 시청률 경쟁에 본격 돌입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의미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권혁남 전북대 언론심리학부 교수는 “하드 뉴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뉴스데스크’에서마저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은 공영성을 내세우는 MBC의 입장과 배치된다”며 “이런 흐름이 KBS까지 이어져 파괴력 있는 비판 보도가 TV에서 점점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성화 흐름을 연말 윤곽을 드러낼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연관시키며 “종편의 보도는 한층 더 상업적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방송 뉴스가 더 격한 시청률 경쟁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스데스크’의 변화를 이명박 정부 출범과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MBC의 정체성 변화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뉴스데스크’의 연성화는 저널리즘적 요청보다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시사 프로그램 ‘W’를 폐지하고 케이블 프로그램을 베낀 ‘위대한 탄생’을 대신 편성한 데서 보여줬듯이, MBC가 가진 종래의 비판정신이 탈색하고 상업화돼 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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