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나 다른 대가를 주고 고용한 병사, 용병(mercenary)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제국 말기에 많았다. 자기 국민의 목숨을 아끼고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 점령지 등의 이민족 출신을 삯을 주고 부렸다. 동ㆍ서양 절대왕조 시대의 군주와 호족도 하급 무사와 병졸을 고용해 상비군으로 삼았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자원(自願)과 징집에 의한 시민군 또는 국민군이 근대 국가의 중추적 요소가 되면서 거의 사라졌다. 흔히 용병으로 일컫는 바티칸의 스위스 근위대와 영국 구르카 여단, 프랑스 외인부대 등은 국제법적으로 용병이 아니다.
■ 전쟁포로의 보호 등에 관한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용병은 '개인적 대가를 받고 국외 전투에 가담한 제3국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도 가입한 부속의정서 47조는 합법적 전투원과 전쟁포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용병의 요건 6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무력분쟁에서 싸우도록 고용하고, 실제 전투에 참가하며, 분쟁당사국 전투원보다 많은 물질적 대가를 받으며, 당사국 국민이나 거주민이 아니며, 당사국 군대 소속이 아니며, 제3국 군대의 공식임무를 위해 파견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 요건을 모두 갖춰야 용병 전투원으로 간주한다.
■ 구르카 병사들이 용병이 아닌 것은 여왕 폐하에 충성을 서약하고 영국 육군의 정식 여단으로 조직된 때문이다. 프랑스 외인부대도 육군 소속으로 군율과 교전수칙 등을 지킨다. 무엇보다 전쟁이나 분쟁지역 파병이 의회 승인 등 국내법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 그래서 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는 합법적 전투원이다. 자국민의 용병 활동을 금지한 나라들은 '군의 지휘통제를 받지 않는 국외 전투 참가'를 용병 행위로 규정한다. 시민혁명 전통에 따라 외국 내전 등의 지원병 참가를 허용하는 프랑스도 2003년 돈벌이 목적이 뚜렷한 개인의 용병 활동을 불법화했다.
■ 동기나 목적이 고상하지 못한 해외 파병을 용병으로 비하하는 관행은 어디나 있다. 그러나 분쟁지역도 아닌 UAE(아랍에미리트연합)에 군 교육훈련을 돕는 특전사 병력을 보내는 것에 용병 논란을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UAE는 걸프 연안국이 대개 그렇듯 파키스탄 등 주변국 출신으로 절반 넘게 채우던 군의 '에미리트화'를 위해 군사 선진국의 파병을 적극 유치하고 있고, 각국은 다양한 국익을 노려 앞다퉈 나선다. 이걸 시비하는 건 무기 수출을 부도덕하다고 욕하는 것보다 강파르다. 국가가 매사 도덕군자로 행세하며 살 수는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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