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스페인의 최고 갑부는 ‘과연 이런 사업으로도 갑부가 될 수 있을까’싶은 일로 떼 돈을 번 사람이다.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부자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 명 모두 옷을 팔았는데, 그것도 명품이 아닌 중저가 의류다.
유니클로의 창업주 야나이 다다시(61ㆍ일본)와 자라(ZARA)의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스페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H&M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스테판 페르손(스웨덴)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단일 업체가 의류 디자인부터 제작 유통 판매까지 총괄하는 SPA브랜드를 키워내 거부를 일궜다. 아시아 최대의 SPA브랜드인 유니클로의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를 소개한다.
경제 위기 때 더 빛난 ‘싼 옷’
1949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야나이 다다시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다녔다.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히피문화와 록음악, 마작 등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양복점을 운영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걱정돼 200만엔을 주며 세계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고, 이 여행이 나중에 중요한 사업 밑천이 됐다고 한다. 71년 대학 졸업 후 대형 유통업체에서 6개월 정도 일하다 72년 아버지의 양복점을 물려받는다.
“옷도 라면이나 생필품처럼 편의점 같은 곳에서 간편하게 살 수는 없을까.” 양복점을 운영하며 장사 노하우를 익힌 야나이는 84년 히로시마에 싸고 편하게 옷을 살 수 있는 매장을 연다. 유니클로 1호점이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길에 필요한 옷을 살 수 있도록 새벽 6시에 문을 열었다. 편하게 옷을 고를 수 있도록 직원은 손님을 따라다니며 옷을 권하지 않고 옷 정리만 했다. 무늬나 장식이 전혀 없는 청바지 티셔츠 속옷 등 베이직 캐주얼을 팔았기 때문에 10대부터 60대까지 누구나 옷을 샀다. 큰 호응 속에 매장 수를 늘려갔다.
90년대 후반의 ‘플리스 열풍’은 유니클로를 일본의 대표 브랜드로 만든다. 플리스는 화학섬유인 폴리에틸렌을 보드랍게 만든 것으로, 얇고 가벼운데다 보온성이 뛰어나 방한복이나 등산복 안감으로 널리 쓰였다. 그런데 유니클로는 이 안감용 소재로 겉옷인 자켓을 만들어 다른 브랜드보다 최고 다섯 배나 싼 가격인 1,900엔에 팔았다. 당시 불황으로 난방비까지 줄여야 했던 일본인들에게 플리스 자켓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98년 200만장을 시작으로 99년 850만장, 2000년에는 2,600만장이나 팔렸다. 총 3,650만장, 일본인 3.5명당 1장을 샀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유니클로는 비싼 소재로 만든 옷을 어떻게 싸게 팔 수 있었을까. 인건비가 싼 중국에 대량 발주해 매입가를 낮췄고, 의류의 기획부터 제작, 유통 판매를 모두 총괄해 거품을 뺐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보온 내의 히트텍이 인기를 끌어 2,800만장이나 팔렸다. 90년대 불황기 때도 나홀로 승승장구했던 유니클로는 2009 회계연도(2008년9월~2009년8월)에는 사상 최고 영업이익(1,086억엔)을 기록했다. 야나이는 금융위기 직후였던 지난해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를 제치고 일본 최고 갑부에 등극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현재 재산은 76억달러(약 8조4,000억원)로 세계 89번째 부자다.
“실패가 성공의 비결”
야나이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플리스 열풍 이후 히트상품 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던 2002년, 그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3년 만에 다시 복귀한다. 그가 자리를 물려준 다마쓰카 겐이치 사장이 안정적 성장만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발전하려면 실패를 더 경험해 봐야 한다.”야나이가 사장으로 복귀하며 한 말이다.
실제로 그가 실패한 사업도 적지 않다. 2002년 시작한 야채 판매 사업은 1년 반 만에 망했고 새로 만든 여성복과 남성복 브랜드도 실패했다. “한 번 성공하기 위해 아홉 번 실패하라”는 소신을 가진 야나이는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철저한 능력주의자이기도 하다. 내로라하는 회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인재들이 유니클로로 많이 왔지만 대부분 입사 수 년 만에 퇴사했다고 한다. 과거에 어떤 성과를 냈든, 현재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는 것을 중시하는 야나이의 인재관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신도 뚜렷하다. 유니클로는 2007년부터 5,00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원을 정규직원으로 고용했다. 기업은 공적 기관이고 비정규직의 고통은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게 야나이의 신념이다. 또 장애인 고용률도 지난해 기준 8%에 달해 일본 대기업 중 가장 높다. 7월에는 방글라데시의 빈곤층 대상 소액 대출은행인 그라민은행과 손잡고 합작회사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빈곤층을 위해 평균 1달러의 값싼 의류를 판매하고, 고용도 창출한다는 계획.
야나이의 다음 목표는 뭘까. 해외진출 등으로 2020년까지 매출액 5조엔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목표 달성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할지 지켜볼 일이다.
다음주에는 월마트의 창업주와 그 가족들, 월튼가(家)를 소개합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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