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M 애도배시오 등 지음ㆍ김승욱 옮김
알마 발행ㆍ334쪽ㆍ1만6,500원
사냥한 동물을 메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향하는 남자들의 무리, 그 사이 집 주변에서 채집한 식물로 겨우 연명하며 아이를 돌보는 여자들. 선사시대 하면 떠오르는 이런 이미지에는 직립보행으로 가능해진 도구의 사용이 주로 남자들 몫이었고, 그들이 뇌 발달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원인 고기를 식탁에 올림으로써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과연 사실일까.
의 공동 저자인 고고학자 J M 애도배시오, 인류학자 올가 소퍼, 과학저술가 제이크 페이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선사시대 여성이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성(The Invisible Sex)’으로 전락한 것은, 최근까지 고고학자들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천, 바구니 같은 여성 관련 물건들이 쉽게 썩어 고고학적 증거로 남기 힘들었던 탓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고고학계의 최신 연구들은 ‘남성-사냥-고기-뇌의 진화’ 공식을 부정한다. 초기 인류는 사냥만 한 게 아니라 하이에나처럼 다른 동물이 사냥해 먹고 남긴 고기를 먹기도 했고, 이런 활동에는 남녀 모두 관여했다. 더구나 초기 인류 화석의 성별을 판별하기란 쉽지 않다. 생물학적 성 구별조차 어려운 마당에 사회적 성 역할을 구별하는 것은 부적절하고도 수상쩍은 가정일 뿐이다.
저자들은 인류의 진화에 기여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한다. 일례로 어미가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생겨난 재잘거림, 즉 ‘어머니 말’이 원시언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가정에 힘을 싣는다. “여성도 인류의 진화에 남성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결론이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편견으로 가득찬 남성 중심의 고고학적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한 점만으로도 눈길이 가는 책이다.
이희정 기자 jaylee@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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