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석 지음
자음과모음 발행ㆍ352쪽ㆍ1만2,000원
소설가 최인석(57ㆍ사진)씨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인 이 책은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다. 동화의 오랜 모티프에 빗대자면 괴물에게 사로잡힌 사랑하는 여자를 구해내고자 하는 남자의 분투기다.
하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순정하지 않고 처절하다. 괴물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인데,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사정없이 끌어내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바로 그 괴물이다. 그 거대한 손아귀에 붙들려 물욕과 현시욕에 휘둘리는 여자가 바로 남자가 구출하려는 사랑이다. 작가 최씨는 소설의 시점을 남자 주인공 이준성의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옮겨가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개인적 정분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건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준성은 자발적 실업자다. 돈을 중심으로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혐오하며 그는 번듯한 직장을 관둔다. “기꺼이 실패를 택할 것이다. 실패는 적어도 윤리적이었다. 한 사람이 실패하면 그가 실패한 그만큼 이 세계는 더 사악해지는 데 실패할 것이다.”(216쪽) 그는 영화감독 친구의 의뢰로 시나리오를 쓰는 등 작가로 근근이 생활하는 한편, 해커 모임에 가담해 대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해킹 활동을 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세속적 성공을 갈구하는 무명의 모델 오서진. 단번에 인기를 거머쥘 욕심에 서진은 드라마 감독들에게 성상납까지 하며 매달리다가 매번 참담하게 이용만 당한다. 명품을 사들이느라 셋집을 처분하고 준성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거액의 사채까지 쓴다. 집안 곳곳에 거울을 설치하는 서진의 강박적 행동은 세상의 허위적 기준에 연연하는 그녀의 삶을 상징한다. 그녀가 미망을 버리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벽하게 세상과 거리를 뒀던 준성의 삶도 그녀의 뒤치다꺼리로 점점 피폐해진다.
하지만 준성은 서진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서진과 헤어지면) 다만 평온하고 외로워질 뿐인가? 아니었다. 그는 빼앗기는 것이다. 저 괴물에게, 저 괴물의 마술에, 진이를, 빼앗기는 것.”(208쪽) 나아가 그것은 “삶을, 삶의 정수를 박탈당하고 마는 것이다.”(209쪽)
하여 그는 괴물과 대적하기로 결심한다. 괴물은 세상의 신이므로 그것과 맞서는 것은 곧 혁명이다. 괴물을 죽이려 또다른 괴물을 부르는 대신 준성은 ‘보다 부드럽고 보다 평화로운 혁명’을 실행한다. 예컨대 그것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본질적 욕구로부터, 아름다움으로 주목받거나 매매되길 원하는 ‘만들어진 욕망’을 떼어내는 것이다. 준성은 서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기다림을 통해 혁명을 완성하고자 한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서진은 끝내 감옥에 갇히는 추락을 겪으면서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간다. 두 사람이 교도소에서 만나는 소설의 감동적 대단원에는 ‘순수의 회복’이라는 희망이 물씬하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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