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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문제는 교육이다

입력
2010.11.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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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풍속화 '서당'은 언제 봐도 정겹다. 훈장님 책상 옆에는 방금 사용한 듯한 회초리가 하나 놓여 있고, 한가운데 아이는 회초리를 맞느라 걷어올린 바지를 막 내렸는지, 눈물을 훔치며 대님을 묶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모습에 킥킥거리며 웃고, 훈장님도 노여움과 웃음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다.

풍속화로나 볼 수 있는 먼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 어린 시절 산골마을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싸리나무 회초리를 썼다. 따끔하게 아프기도 했지만 종아리에 자국이 며칠씩이나 남아 아이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족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어른들께 종종 회초리를 맞았다. 그런 매는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따스해지는 추억이다.

회초리의 특성 때문만도 아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월말고사만 끝나면 미리 약속한 대로 대걸레 자루로 반 아이들 엉덩이를 때렸다. 점수와 전교 석차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적용했으니, 한 대도 맞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아이들은 70명 가운데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모두들 특별히 고마운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추억의 매, 악몽의 매

악몽의 매도 있었다. 서울로 전학한 직후인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슬리퍼로 뺨을 맞았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아이들이 두 가지를 수군거렸다. 어머니가 학교에 오지 않은 것, 당시 성행했던 담임 선생님 과외에 불참해서라고 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학교를 찾은 이후 선생님의 눈길이 달라졌으니, 듣던 대로 서울 아이들은 정말 영악했다.

무엇이 추억의 매와 악몽의 매를 가를까.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형식과 절차의 예측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 추억이 되는 매는 예측 가능성이 높다. 인과관계가 충분히 예고돼 있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합의된 기준에 따르는 매는 인격을 해치거나 마음의 상처로 남지 않는다. 둘째로 중요한 것이 행위 정형성이다. 회초리건 몽둥이건 종아리나 엉덩이 등 제자리에 제대로 떨어지면 잠시 외상은 남겨도 심리적 병소(病巢)를 만들지는 않는다. 반면 가느다란 회초리라도 등짝이나 얼굴 등을 마구 때리면 전혀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때리는 사람의 정서적 안정이다. 그 여부는 매질에 힘이 드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평상심으로 때리는 매는 힘이 든다. 거꾸로 화풀이 매질은 힘이 들지 않는다. 대개는 귀찮아서라도 하기 힘든 매질에 공을 들일 수 있다면, 여간 열의 있는 교사나 어버이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에 대한 개인적 불만도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체벌을 가리지 않은 데다 결과적으로 교단의 자율을 해쳤다는 생각 때문이다. 흔히들 학생 인권을 말하지만, 추억의 매와는 무관하다. 그런 관심의 주된 대상인 악몽의 체벌은 이른바 '부적격 교사'에 의해 저질러진다. 전국 각급학교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붙인 별명 가운데 '변태'나 '미친개'가 의외로 많다. 체벌금지 규정이 아니더라도 당장 걸러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좋은 일자리'를 지켜주자는 그릇된 패거리 의식으로 이들을 살려둔 채로 내놓은 체벌 금지는 위선의 구호에 가깝다.

자율을 잃어가는 교단

더욱이 체벌은 물론이고 신체적 고통이 따르는 모든 벌을 금지한 것은 교단의 자율을 무시한 처사다. 남다른 성의가 아니고서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벌을 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전면금지는 성실한 교사들의 자율권을 빼앗고, 게으른 교사들의 양심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정말 받아야 할 교육의 실종이다. 학교가 사회화의 필수 과정이라면 교과목 공부에 앞서 최소한의 규범을 지키는 자세는 익히게 해야 한다. 인권이 남의 권리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 욕망의 무한 표출이라거나 앞으로 아이들이 절제할 줄 모르는 욕망의 충돌이 빚는 약육강식 사회에 내던져지길 원한다면 혹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릇된 행동은 제재를 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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