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억새 꽃이 만발해 장관’이라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지금 보는 것은 꽃이 아니라 씨앗이다. 억새는 9월에 자주색 꽃을 피우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가을이 되면 씨에 붙은 털이 부풀어 이삭이 하얀 솜뭉치처럼 피어난다.
대부분 벼과 식물은 바람을 매개로 꽃가루받이를 하고 열매를 이동하기 때문에 꽃이 화려할 필요도 없고 향기와 꿀도 만들지 않는다. 억새는 이름처럼 뿌리가 질길 뿐만 아니라 씨앗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한겨울까지 남아 자손을 널리 퍼트려줄 강한 바람을 기다린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억새 밭에 있으면 구슬프게 우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흘러간 가요 ‘짝사랑’에 나오는 으악새는 억새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배웠지만 억새 바람을 새 울음에 비유한 것이 오히려 절묘하다. 강한 바람을 견디고 이용하는 억새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람의 꽃이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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