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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햄버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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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햄버거 할아버지

입력
2010.11.0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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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근검절약을 한평생 생활 신조로 삼았다. 자녀들과 손주들이 오면 할아버지는 함께 외식하러 나가는 것을 즐겼다. 가는 곳은 항상 햄버거 집이었다. 집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차를 타고 좀 멀리 교외로 나가야 하는 곳까지, 늘 같은 체인의 햄버거 집을 찾아 가셨다.

처음에 가족들은 "손주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니까" 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도 햄버거를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다른 외식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다"라는 것이 할아버지가 햄버거 집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갈비란 본래 한 두대 먹는 것"

몇 년 전 장남이 갈비 집에 가자고 제안했는데, 계산서를 받은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다. "가족 외식으로 이런 큰 돈을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음식에 비해 값이 터무니 없는데 왜 이런 바가지를 쓰느냐. 또 갈비란 본래 한 두 대, 많아야 두 세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 식당이 떠나가게 떠들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귀아귀 먹어대는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할아버지는 꾸중하셨다.

자녀들이 안내하는 식당에서 몇 번 외식을 하다가 할아버지가 정한 곳이 햄버거 집이었다. 생선 채소 고기 등 여러 종류의 햄버거가 있으니 식성대로 고를 수 있고 맛도 괜찮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패스트 푸드는 몸에 안 좋다"고 며느리가 반대했지만 "한 달에 두 세 번 먹는 다고 나쁠 것 없다. 또 우리 같은 노인에겐 햄버거가 별식이다. 모든 물건은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라고 할아버지는 주장하셨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오늘의 노인 세대는 물자와 돈에 대한 생각이 젊은 세대와 많이 다르다. 물자가 귀한 시대에 성장했고, 전쟁을 겪으며 굶주림을 체험한 세대여서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화장지 한 장도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는 손주들이 화장지를 마구 뽑아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는 메모지가 있는데도 이면지를 사용하고 종이 봉투, 나일론 보자기, 몽당연필, 리본, 포장지, 단추 등을 버리지 못해 온갖 잡동사니에 묻혀 산다.

요즘 나는 노인들의 이런 생활 태도가 더 없이 아름다운 미덕임을 발견하고 있다. 물자를 아끼고 자신을 위한 소비를 삼가는 마음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겸손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무를 잘라야 만들 수 있는 화장지를 반으로 나눠 쓰는 할머니는 궁상을 떠는 게 아니라 나무들의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종이를 아끼는 것이다. 물건 가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햄버거를 선택했던 할아버지는 구두쇠가 아니라 생활경제 학자였다.

"갈비란 본래 많아야 두 세 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절제와 점잖음이 배어있다. "실컷 먹고 실컷 마시고 실컷 즐기겠다."는 요즘 풍조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대를 이어 전해내려 온 굶주림의 기억이 세계 경제 10대국을 넘보는 이제는 사라질 때도 되었건만 무엇이든 '실컷' 하겠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글지글, 부글부글, 와글와글 식당

이런 욕구에 편승한 바가지 상혼이 음식 값을 터무니 없이 올리고, 실컷 먹고 마시는 문화가 식당을 시끄러운 장터로 만들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맛있다는 식당은 지글지글 굽고, 부글부글 끓이고, 와글와글 시끄럽고, 연기와 김이 자욱하다. 이런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실컷 먹어야 "먹은 것 같다"고 만족하는 고객들이 이런 식당을 번창하게 한다.

나도 전에는 구두쇠와 궁상이 미덕임을 몰랐다. 자신을 위해 물자를 풍풍 쓰는 것이 천한 것임을 몰랐다. 절제와 절약이 반듯한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절제의 미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이 된다. 화장지를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손주들에게 물려줘야 할지 안타깝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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