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진행된 과거사 청산 작업은 권위주의 시절 국가가 저지른 인권 침해의 책임을 따지고 피해자에 보상, 민주주의의 전진을 가져다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재승(46)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앨피 발행)에서 과연 ‘국가범죄(state crimes)’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으로서 과거사 청산 작업은 왜 필요한가 등의 물음에 답한다. 이 교수는 독일 바이마르시대의 법률을 전공하고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낸 인권법 전문가.
국가범죄는 정부범죄, 국가에 의해 조종된 범죄 등의 용어와 혼용되기도 하지만 ‘국가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유린’을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학계에서 쓰이는 용어다. 이 교수는 1998년 제정된 국제형사재판소 규정을 근거로 국가범죄의 범위에 정치적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이유로 자행된 집단살해, 살인, 전향, 녹화사업, 의문사, 고문, 구금, 강간, 강제격리, 숙청, 재산강탈, 강제합병 등을 포함시킨다.
저자는 책에서 국내의 울산보도연맹사건, 제주 4ㆍ3사건 등을 비롯해 독일의 나치 전범 재판,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 재판 등 해외의 국가범죄 사례와 그 청산 작업의 핵심 쟁점들을 두루 검토해 정리했다. 단순히 사례를 모은 것이 아니라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에 대한 역사적ㆍ법리적 근거와 그 방법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국가범죄 책임자 처벌의 방법으로 과거 공산당이나 비밀정보기구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공직 보유를 제한한 체코나 헝가리의 숙정법과 같은 방식에 대해서 그는 비판적이다. ‘숙정’의 방식은 히틀러가 진보파를 배제할 때 사용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효과는 높지만 독재의 지문이 묻어있는 방법”이라는 것. 또 국가범죄의 피해자 보상 방법으로 필리핀 정부가 독재자 마르코스의 해외재산을 몰수해 배상금으로 사용한 방식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저자는 “범죄자의 재산에 의존해 국민의 책임을 씻으려는 것은 장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교수는 “만약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과거를 캔다고 돈이 나오냐’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앞으로 국가가 또 자행할 수도 있는 인권 침해도 묵인할 수 있다”며 시민적 각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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