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이틀째인 4일에는 한국전쟁 당시 각각 국군과 인민군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형제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됐다.
김대종(77)씨는 이번 상봉을 통해 북측 여동생 계화(69)씨를 만났다. 함경남도 북청에 살던 김씨는 전쟁이 터지자 큰 형 주종(1976년 사망)씨와 함께 국군에 입대했다. 반면 공산주의자였던 작은 형 태종(1992년 사망)씨는 1년 전 인민군에 입대한 상태였다. 태종씨는 김씨가 군에 들어가기 한 달 전 편지를 보내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평양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전투에 나간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 길로 연락은 끊겼다.
태종씨는 전투 중 한쪽 눈을 실명했지만 북에서 인민군 중장(우리의 소장)까지 지냈다고 한다. 김씨는 “국군 3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는데 그 때마다 내가 쏜 총탄에 형님이 맞지나 않을까 늘 걱정했었다”며 “이데올로기란 것이 형제지간을 갈라놨다”고 가슴을 쳤다.
인민군과 국군 모두로 참전한 상봉자도 있었다. 한자옥(80)씨는 1950년 인민군에 동원됐다가 포로로 잡혔고, 이후 국군에 다시 입대했다. 한씨는 인민군으로 복무할 때 아내 뱃속에 있던 북쪽의 딸 순희(59)씨를 처음 만났다.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박정심ㆍ79)는 건강이 좋지 않아 딸이 건넨 사진을 통해서나마 대면할 수 있었다. 한씨는 “딸과 만나 어느 정도 한을 풀었지만 아내를 못 봐 아직 응어리가 남았다”며 사진 속 아내를 한동안 어루만졌다.
개별상봉이 진행된 이날 금강산호텔의 한 객실에서는 아름다운 클라리넷 선율이 흘러 나왔다. 북쪽의 딸 성숙(63)씨와 재회한 김승은(92)씨는 동행한 남쪽 아들 덕주(34)씨가 연주하는 미국 민요 ‘알로하오에’의 멜로디를 들으며 잠시나마 60년 전으로 돌아갔다. 알로하오에는 김씨가 피난오기 전 아내와 딸에게 이따금씩 불러주던 노래였다. 아버지와 딸은 클라리넷 리듬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며 회상에 잠겼다. 성숙씨는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올해 2월 돌아가셨다”며 “태어나서 처음 ‘아버지’라 크게 외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한편 북측 단장인 최성익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3일 열린 환영만찬에서 “6ㆍ15 북남 공동선언의 시대에 통일의 명소로 이름떨친 금강산이 민족적 단합과 화해의 상징으로 계속 빛을 뿌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관광 재개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60년 이산의 한을 달래는 순수 인도적 행사장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인지 북측은 상봉 과정에서 가족들의 동선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남측 취재진과 수시로 승강이를 벌이는 등 극도로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은 5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환한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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