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은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한 지난 1966년 방콕대회에서 여자단체전 동메달을 따낸 이후 그동안 금메달 14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22개를 획득했다. 한국이 역대 대회에서 아시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러나 배드민턴 대표팀에 아시안게임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올림픽 때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오히려 올림픽 보다 더 어렵다.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모두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위의 기대는 높기만 하다. 시쳇말로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망신'이다. 실제로 한국 배드민턴은 지난 2006년 도하 대회에서 28년 만에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하는 부진에 빠졌다.
배드민턴에는 남녀 단식(2개), 남녀 복식(2개), 남녀단체전(2개), 혼합 복식 등 총 7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광저우대회에서도 개최국 중국이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싹쓸이를 노리고 있어 자칫하면 2연속 노골드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표팀은 일단 이용대(22ㆍ삼성전기)-정재성(28ㆍ국군체육부대) 조가 출전하는 남자복식과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팀 김중수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는 의외의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했다. 김 감독이 말한 의외의 종목은 대표팀 14년차의 베테랑 이현일(30ㆍ강남구청)과 박성환(26ㆍ국군체육부대)이 출전하는 남자 단식이다.
한국 배드민턴은 그 동안 출전한 11번의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단식에서만 유일하게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여자단식은 94년 히로시마대회에서 방수현이 금메달 숙원을 풀었지만 남자단식은 이현일이 2002년 부산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이 최고 성적이다. 이현일은 2006년 도하대회에서도 동메달에 그쳤다.
이현일과 박성환은 사상 첫 금메달 사냥을 위해 지난 12일부터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6시간 이상씩의 강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물론 과거 성적이 말해 주듯 상황은 녹록지 않다. 남자단식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리총웨이(1위)와 중국 린단(3위)의 벽을 넘어야 한다.
시드를 받지 못해 32강전부터 나서는 이현일과 박성환이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선 모두 5번을 이겨야 한다. 세계 랭킹 10위안에 아시아 선수가 9명이나 되는 만큼 16강부터는 모든 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 없다.
2002년 부산 대회부터 3연속 출전하고 있는 이현일은 16강에서 중국 첸진(4위), 4강에서는 리총웨이와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14위의 박성환은 8강에서 인도네시아의 타우픽 히다야트(5위), 4강에서는 린단과 격돌할 공산이 크다.
모두 쉽지 않은 상대들이지만 이현일과 박성환은 자신감에 차 있다. 지난 5월 1년 8개월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현일은 "이번 대회가 사실상 대표팀 은퇴 무대인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어차피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상대들이기 때문에 경기 당일 컨디션과 플레이에 따라 메달 색깔이 갈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파리세계선수권대회에서 린단을 꺾으며 남자단식 3위에 오른 박성환은 "내 자신이 몇 프로나 가진 기량을 발휘하느냐가 가장 큰 변수다. 남은 기간에 부상 없이 준비를 잘해서 80~90% 컨디션만 유지한다면 충분히 금메달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김중수 감독은 "이현일은 체력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노련미와 정확성은 세계 최정상급 수준"이라며 "박성환은 훈련장에서는 세계챔피언이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컨트롤이 안돼 흔들리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공격 스매싱이 정확히 들어가는 날은 누구와 붙더라도 쉽게 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승택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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