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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차 한 잔 올리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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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차 한 잔 올리고자

입력
2010.11.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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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京都) 지하철역에서 스님이 모델이 된 커피 광고 포스터를 보고 무릎을 쳤다. 스님이라고 시속을 따르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러나 전통의 향기가 남다르다는 교토, 더구나 다문화(茶文化)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고 보니, 딱히 차를 알지도 못하는 주제임에도 묘한 낭패감 같은 것이 들었다.

내친 김에 야마모토 겐이치(山本兼一)의 역사소설 를 읽었다. 일본 다도의 기초를 확립한 다성(茶聖) 센 리큐(千利休, 1522-1591).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두(茶頭)'로 사무라이 최고 권력의 심장부에서 영욕을 겪은 그의 일대기가 선연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위대한 군주였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을 이집트학의 성과로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 문화에의 공헌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사랑할 수 있을 법도 하다. 롤랑 바르트가 에서 넋을 빼앗긴 일본적 풍경의 상당 부분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계가 깊다. 벚꽃놀이가 그렇고, 일본화가 그렇고, 다도가 그렇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자 히데요시에게도 리큐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다다미 한 장 반의 소박한 초가 다실이, 외로운 동백꽃 한 줄기가, 이 빠진 이도(井戶) 다완이, 으스대는 황금다실과 백화난만한 화려함과 천하의 당물(唐物)을 넘어선다. 그의 손끝에서 일상의 잡기들이 예술품으로 승화된다. 누구나 보았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로지 아름다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던 센 리큐는 히데요시에게 죽음을 하사 받고 할복으로 생애를 마감한다. 죽음도 불사한 그 아름다움의 모태는 조선 여인, 그의 유품인 녹유향합, 그리고 무궁화였다. 그 몇 년 후 '도자기 전쟁'이라는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조선 막사발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는 국보가 되었다. 고려물(조선다완)은 지금도 다도의 명기로 사랑 받고 있으니 역사도 그의 편이다.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국경을 넘고 시대를 넘고 권력을 넘는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절대 권력일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열락의 왕국 주라쿠다이(聚樂第),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다이도쿠지(大德寺) 삼문의 센 리큐 목상도 이제는 없다. 그러나 머리를 숙여야 들어 갈 수 있는 다다미 두어 장의 초가 다실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으면, 그 고요함 속에 천 년의 열정과 혼이 꿈틀거린다. 그 뜨거운 피를 다독여 주었을 맑고 깊은 차의 향내가 전해지는 듯하다.

찻물이 끓는 소리를 '극락의 바람소리'라 했던가. 욕망과 권태의 파도가 엄습하는 일상의 바다에서도 필요한 것은 각성이 아니라 진정일 게다. 커피가 아니라 차다. 아무나 다인(茶人)이 될 수는 없을 터, 다인의 마음으로 '차나 한 잔' 할까 싶지만, 그 조차 간단치 않다. 예컨대 야나기 무네요시가 짚어볼 조목으로 든 것은 이렇게 많다.

한 잔 올리고자/ 일신을 버린 성인에게/ 불당 안의 수행자에게/ 맑은 마음의 비구니에게/ 수도하는 소사(小師)에게/ 가난한 선비에게/ 황혼 길의 가인에게/ 순박한 젊은이에게/ 마음씨 고운 아가씨에게/ 꾸밈없는 주인에게/ 검소한 시골사람에게.

권하지 말지어다/졸부에게는/가짜 스승에게는/새파란 다동(茶童)에게는/ 잘난 체하는 병아리 다인에게는/ 빠져버린 다도광(狂)에게는/ 분별없는 쇼핑광에게는/ 오만한 학자에게는/ 사치하는 마누라에게는/ 탐욕 많은 상인에게는/ 아첨하는 무리에게는. (에서)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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