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풀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간지럼 태우는 거다. 비몽사몽 하는 아이를 얼른 깨워야 할 때도 효과 만점이다. 양손을 쫙 편 다음 손가락들을 굽히고 마귀할멈 같은 포즈로 아이를 살짝 흘겨보며 슬금슬금 다가간다. 목소리를 한껏 깔고 “지금 온다, 온다∼” 하며 곧 엄청나게 간지러울 테니 각오하라는 예고 차원의 ‘음향효과’도 필수다.
엄마의 간지럼 예고가 시작되면 아이는 칭얼대다가도 입가에 살짝 웃음을 흘리며 금새 몸을 움츠린다. 그래도 엄마 손가락은 아이의 목과 겨드랑이, 옆구리마다 파고들며 무차별 간지럼 폭격을 가한다. 아이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기분도 나아지고 잠도 깬다. 내가 자주 쓰는 이 방법을 요즘은 남편도 애용한다.
간지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처음 내놓은 이는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라고 한다. 간지럼을 태울 때 사람이 웃으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행동은 일종의 반사작용이며, 침팬지 같은 유인원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간지럼을 타는 게 외부 자극에 대해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는 추측도 있다. 간지럼을 태우는 손가락을 외부 자극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를 피해 계속해서 몸을 빼내려다 보니 이리저리 움직이게 된다는 얘기다.
한동안은 가려움이 통증과 비슷한 신경의 반응이라고도 여겨졌다. 간지러움이 심하면 가려움이 되고, 가려움보다 자극의 세기가 강하면 통증이 된다는 것. 피부에는 외부 자극을 인식하는 감각 수용체가 여럿 있다. 촉각과 온각, 냉각, 통각 수용체의 4가지다. 간지러움이나 가려움을 인식하는 수용체는 따로 없으니 통각 수용체가 그 역할을 대신할 거라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려움과 통증은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일어난다는 설명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는 간지럽거나 가려운 느낌만을 뇌에 전달하는 신경세포나 수용체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간지러움을 인식하는 과정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간지럼이 외부 자극에 대한 단순한 신체적 반응이 아니라 인간관계 안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반응이라는 점이다. 단순한 신체반응이라면 스스로나 타인이 간지럼을 태울 때도 항상 같은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모르는 이나 싫어하는 이가 간지럼을 태운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아니라 화가 날 것 같다. 간지럼을 태워 아이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 누구보다 서로 친밀하다는 증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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