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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쿠릴 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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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쿠릴 열도

입력
2010.11.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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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 러시아 연해주의 캄차카반도에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를 잇는 바다에 섬들이 줄지어 서 있다. 환태평양 화산대를 이루는 화산섬들로 태평양과 오츠크해를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한 쿠릴(일본명 치시마ㆍ千島) 열도다. 1,300㎞에 이르는 이 열도에서 우루프(得撫)와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ㆍ擇捉) 두 섬 사이를 경계로 한 남쪽 부분, 즉 남쿠릴 열도의 섬들이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이투루프와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ㆍ國後),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등 네 섬으로, 일본에서는 흔히 '북방 4도'라고 불린다.

■ 섬 이름이 러시아나 일본 고유어와 거리가 먼 데서도 짐작이 가듯, 근대적 영토개념이 싹트기까지는 고아시아족의 한 갈래인 아이누족이 지배하던 땅이었다. 18세기 들어 러시아의 진출이 본격화하자 홋카이도를 비롯한 아이누의 땅을 지배한 일본 바쿠후(幕府) 정권도 열도의 남과 북을 갈라 남쪽에 대한 영유권을 굳혔다. 일찍이 1855년 통상우호조약에서 일본의 영토로 인정됐고, 1875년 공동관리 구역이던 사할린(일본명 가라후토ㆍ樺太)과 우루프 등 일부 북쿠릴 열도 남부 섬들을 맞바꾸는 조약에서도 남쿠릴 열도의 일본 영유권은 확고했다.

■ 남쿠릴 열도의 영토 안정은 결국 전쟁으로 깨졌다.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가 사할린 남부를 일본에 할양, 1875년 교환조약이 폐기됐다. 2차 대전 후인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일본은 사할린 남부를 다시 포기했으나 종전 직전에 참전한 소련은 조약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점령한 남쿠릴 열도를 실효 지배해 왔다. 1956년 양국 평화조약 체결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홋카이도에서 가까운 시코탄과 하보마이 등 두 섬의 일본 반환이 원칙 합의됐다. 그러나 1960년 미일 방위조약 체결에 반발한 소련은 이 약속을 철회했다.

■ 이후에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약속 등 두 섬의 반환 기회는 있었으나 '북방 4도'의 완전 반환을 바라는 일본 여론과 러시아 국내 정세가 맞물렸다. 최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남쿠릴 열도 방문으로 문제가 더욱 꼬였다. 영유권 문제로 한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모두와 갈등을 빚고 있으니 일본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의 영유권 분쟁 인식은 오랫동안 북방4도, 댜오위다오, 독도의 순이었다. 그것을 흩뜨린 결과가 현재의 진퇴양난인 셈이어서,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라도 '독도 끈'을 맨 먼저 놓을 만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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