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몹쓸 병고에도 스승의 눈빛만은 해맑았다. 표정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는 스승께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오른손 하나였다. 무릎을 꿇고 그 손을 잡자 스승은 내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누구인 줄 안다는 뜻일 것이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전에도 스승 앞에서 운 적이 있었다.
어느 핸가 동문수학한 동기가 신춘문예로 등단해 우리에게 문학과 사랑을 가르쳐주신 스승을 모시고 경주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 나는 스승 앞에서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울음이 끝날 때쯤 스승은 내 등을 두드리며 '네가 객지생활로 힘든 모양이구나'라고 위로해 주셨다.
스승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 듣고도 내 삶의 신고(辛苦)를 핑계로 찾아뵙지 못했다. 하루는 잠시 낮잠이 들었는데 꿈속으로 스승이 찾아오셨다. 환한 웃음으로 찾아오셨다. 스승께 안겨 펑펑 울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베갯잇 흠뻑 눈물이었다. 이승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제자를 찾아왔나 싶어 놀라 알아보니 스승은 여전히 병중이었다.
나는 현실에서, 꿈에서, 병실에서 스승께 세 번의 눈물을 보였다. 스승의 뇌는 어린아이처럼 작아지고 있다고 했다. 스승께서는 그렇게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중인 모양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가 다음 세상으로 훌쩍 건너가 다시 태어나실 것이다. 그 세상에서도 나는 스승의 제자가 될 것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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