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편의 도색영화가 할리우드를 들썩이게 했다. 유명 배우 로렌스 피시번의 딸인 몬태나 피시번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애전문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가 지난 9월 특집기사를 마련할 정도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몬태나가 "배우가 되고 싶어 출연했다"고 밝히고, 로렌스가 "내 딸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대응하면서 화제는 꼬리를 물었다. 로렌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네오(키애누 리브스)를 돕는 모피어스 역으로 우리에게 낯익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발달로 기존 포르노 산업이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시장만 봤을 때 예측은 빗나가고 있다. 도색영화 시장규모는 연간 13억달러로, 주류 영화시장(10억6,00만달러)을 압도하며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위기 극복의 돌파구는 몬태나나 영화배우 파멜라 앤더슨 같은 유명 인사를 앞세운 특화 전략이었다. 살이 부딪히는 화면 속에 특별한 뒷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유호프로덕션과 한시네마타운이 양강 체제를 구축하며 갖가지 '부인'시리즈로 음지의 비디오시장을 장악한 적이 있다. 지금도 '슈퍼스타S' '선수의 법칙' 등의 제목을 단 에로 비디오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옛 영화를 되찾기엔 버거워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영화인들이 3D영화 '아바타'의 성공에 쾌재를 부르며 기대를 한껏 부풀렸을 듯하다. 입체적으로 사람의 나신을, 그리고 남녀간 사랑의 행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한줄기 구원의 빛으로 비쳤을 만도 하다.
당연하게도 지난달 28일 개봉한 3D 에로물 '나탈리'의 등장이 갑작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제작사는 사랑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전해주는 '이모션 3D 멜로'라고 지칭하지만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관객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집요하게도 남녀의 몸에 초점을 맞춘다.
"노골적인 에로면 어떠냐, 돈만 잘 벌면 되지"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나탈리'의 지난 주말 흥행성적은 참패에 가깝다. 4만4,879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순위 7위에 그쳤다. 추석에 개봉한 '시라노; 연애조작단'(5만3,090명)에도 못 미치는 성적이다. '입체적으로 벗긴다'는 호객행위만으로는 관객들의 발길을 끌기에 역부족이었다.
'나탈리'가 충무로에 던지는 교훈은 여럿이다. 영화의 궁극적인 미래인양 여겨지던 3D가 만사형통의 비기는 아니라는 것, 화끈한 볼거리보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농익은 이야기가 먼저라는 것 등. 결국 좋은 영화는 관객의 눈과 머리를 자극하기보다 가슴을 울린다는 상식, 변함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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