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환율전쟁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이번 서울 주요20개국(G20) 회의는 물론, 그 이후로도 한국은 중국과 미국을 중재할 적임자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흐름, 특히 중국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당장 이번 서울 정상회의도 중요하지만 이후 이어질 변화에 잘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회의가 잔뜩 부푼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각국이 원칙에는 합의하겠지만 구체적 실행계획까지 확인 받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뜻이다.
-서울 정상회의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무엇이 돼야 할까요.
"금융시장 안정도 중요하지만 무역불균형과 환율이 핵심과제가 될 겁니다. 무역불균형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입니다. 미국은 경상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에 이르는 반면 중국은 경상흑자가 GDP의 6%나 됩니다. 사태 원인을 미국은 위안화의 저평가에서 찾는 반면, 중국은 미국의 경제체질(과소비ㆍ저저축) 탓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일리가 있는 얘깁니다."
-그럼 해결이 어렵다는 말씀인가요.
"단기적으로 보면 체질보다 가격이라는 점에서 중국 책임이 더 큽니다. 중국은 무역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만끽하면서 환율은 국가통제 아래 두고 있어요. 미국은 환율도 시장에 맞추라는 입장인데, 설득력이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서방시장에 의존해 고도성장을 누리고 있는 터라 결국 적정선에서 타협할 걸로 봅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점진적 위안화 절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요."
-미ㆍ중ㆍ일 간 환율전쟁은 어떻게 될까요.
"구조적으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미국의 적자는 과소비와 낮은 저축률 등 경제체질 때문입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죠. 달러가치 하락은 앞으로도 막기 어려울 겁니다. 일본은 반대로 저소비와 과저축에 다른 무역흑자 문제이죠. 엔고 역시 추세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뜻이죠. 두 나라 추세가 바뀌기 어려우니 결국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습니다. 미국ㆍ일본 보다 운신의 폭도 넓습니다. 다만 현재의 국제경제 환경을 깨고 싶지 않을 겁니다. 수출 일변도에서 내수 쪽으로 경제구조를 바꿔야 할 처지이기도 합니다. 중국도 점진적 위안화 절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타협의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경주에서 환율전쟁의 '휴전합의'는 이뤘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타협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는데 서울 정상회의 때 '종전 선언'도 나올까요.
"휴전이 각국에 심리적 영향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되느냐는 각국, 특히 중국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이 GDP의 6%인 경상흑자를 당장 4%로 낮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현 상태로는 실효성 있는 합의로 보기 어려운 이유죠.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진전된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속 시원한 결과는 나오기 어려울 걸로 봅니다."
-그렇다면 의장국인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국제적인 협력, 특히 미국과 중국간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이는 서울 정상회의 이후에도 유효한 역할입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지만 중재자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이 기피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넓게 보면 미ㆍ일과 중국 사이를 한국이 중재하는 역할이 기대됩니다."
-중국을 계속 강조하시는데, 중국의 위상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중국은 2조달러를 가진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입니다. 대부분 미국 국채로 갖고 있는데 갈수록 달러가치가 떨어지니 다른 통화로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국채를 사들이면서 당장 우리 채권금리가 뚝 떨어지잖아요. 한은의 통화정책도 무력화하는 힘입니다. 앞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어요."
-위안화가 절상되면 우리 경제에도 영향이 클 텐데요.
"원화도 덩달아 절상될 가능이 큽니다. 우리도 대비를 해야죠. 적당한 속도의 점진적 절상은 우리 경제에도 장기적으로 바람직합니다. 30년 전 일본 엔화는 달러 대비 360대1에서 지금은 80대1로 4배나 절상됐습니다. 반면 원화는 외환위기 직전 800대1에서 지금은 되려 1,100대1로 절하됐구요. 정상 경제라면 800대1 상황으로 돌아가야 맞습니다. 다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가는 건 막아야 합니다."
-미국 경제는 결국 중국에 역전 당하나요.
"미국은 10년 전 아시아가 위기였을 때 호황을 누렸습니다. 1990년부터 20년간 연평균 3%대 성장에 2.5% 수준의 저물가 호황이 지속됐죠. 세계화에 따른 각국의 개방과 중국의 저임금 경제구조 덕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 거품이 꺼졌고 최근 경기하락은 장기호황이 이제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앞으로 몇 년이 될 지 모르지만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최근의 환율전쟁도 이런 불경기와 실업사태 등을 해결하려는 선진국들의 몸부림에서 촉발된 겁니다. 반대로 이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호황을 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향후 세계 경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소득격차가 축소되는 평준화 과정을 꾸준히 겪을 겁니다."
● 박승 전 총재는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1976~2001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88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1988~1989년 건설부 장관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2~2006년 한국은행 총재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사진=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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