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연이은 압수수색과 핵심 관계자 줄소환에도 불구하고 비자금 조성 경위를 뚜렷하게 밝혀내지 못하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검찰이 "수사는 정상적인 속도로 가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31일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과학화되고 인권을 중시하면서 자백과 진술 중심에서 자료 물증 중심으로 수사 패러다임이 변해 예전에 비해 수사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최근의 수사 장기화는 (오히려) 하나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실제 과거 사례를 보면 검찰 수사가 보통 20~30일만에 끝났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수사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루된 '장영자ㆍ이철 부부 어음사기사건'의 경우 검찰은 수사 시작 단 22일 만에 19명을 구속했다. 또 1997년 정치권과 연루된 '한보그룹 특혜대출 사건'도 검찰은 단 28일 동안 수사해 당시 정치실세와 내무부장관 등을 구속했다. 그러나 2003년 'SK 비자금 사건'은 약 89일 걸렸고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은 약 120일 걸렸다. 2005년 '먹튀' 논쟁을 일으킨 '론스타 사건'은 수사가 종결되는데 약 11개월이 소요됐다.
특히 검찰은 태광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이 차명계좌 하나로 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과 주식 등 문어발식으로 퍼져 있어 이를 다 조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봉욱 차장검사는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가) 비유를 하자면 캄캄한 방에 굉장히 많은 바늘이 숨겨져 있는데 이런 바늘을 찾는 것과 똑 같은 상황"이라며 "(검찰은) 지금 숨겨진 바늘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태광그룹 비리 의혹 최초 제보자인 서울인베스트 박윤배 대표도 "검찰의 수사가 보통 시속 50km라면 지금 검찰은 시속 500km의 속도로 수사하고 있다"며 "주변에서 검찰이 시속 1,000km쯤으로 수사 속도를 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검찰이 태광그룹 이호진(48) 회장의 수백억원대 차명 부동산 보유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태광관광개발 최양천(61) 전 대표가 이전에도 차명 부동산을 소유해 두 차례나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31일 수원지법에 따르면 최 전 대표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태광컨트리클럽(태광CC) 인근 농지 4,800여㎡와 1만3,000여㎡를 직원 등의 이름을 빌려 매입한 혐의(부동산실명제법 위반)로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 기소돼 각각 징역 9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최 전 대표가 이 회장의 차명 부동산 관리에 깊게 관여한 정황을 잡고 지난달 28일 최 전 대표를 소환, 조사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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