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엔ㆍ달러 환율이 역사상 최저치인 80엔선을 위협할 정도로 초엔고(超円高) 현상이 이어지며 일본으로부터 핵심 부품이나 소재ㆍ장비 등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 그러나 한국산 부품과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일본 업체들의 방한이 잇따르고, 우리 기업들의 일본 안방 시장 공략이 재점화하는 등 초엔고 특수도 나타나고 있다.
31일 지식경제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1~10월 대일 무역수지 적자액은 이미 3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경부 관계자는 “9월까지 대일 무역수지 적자액이 274억달러에 달했다”며 “매월 적자액이 30억달러 가량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대일 무역수지 적자액은 총350억달러를 웃돌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30%이상 늘어난 것이고, 지금까지 연간 최대 대일 무역수지 적자액이었던 2008년 327억달러보다도 10% 가량 많은 것이다.
이처럼 대일 무역수지 적자액이 커진 것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대일 수입액이 커진 데다 올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과 시설 투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만 해도 100엔까지 치솟았던 엔ㆍ달러 환율은 29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장중 한 때 80.37엔까지 하락했다. 지금으로서는 역대 최저 엔ㆍ달러 환율인 1995년 4월19일의 79.75엔도 깨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1~9월 일본으로부터 수입액도 지난해 351억달러에서 올해 474억달러로 35%나 증가한 상태다. 우리 기업들의 전 세계 수출이 늘면서 일본으로부터 부품ㆍ소재 수입 등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9월(1~20일 기준) 일본으로부터의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11%나 증가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시설 투자 등에 따른 장비 수입도 컸다.
그러나 초엔고 현상은 우리기업에겐 기회의 측면이 적잖다. 10월27~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글로벌소싱플라자’엔 일본 가전제품 유통 대기업인 이디온(edion)과 화장품 및 잡화 유통 체인인 코스모스약품, 가정용 잡화 취급 업체인 도쿄유니콤, 건강미용식품상품을 파는 셀라 등 일본 업체들이 대거 참석했다. 초엔고로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진 우리나라 상품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10월13~15일 도쿄에서 열린 ‘2010 도쿄 한국부품산업전’도 이 때문에 성황을 이뤘다. 도요타, 혼다, 닛산, 미쓰비시 등 일본 자동차 업체마다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한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초엔고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한국산 부품의 구매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반면 일부 우리 기업들은 일본 안방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 9월 일본 TV 시장 진출을 선언한 LG전자는 11월부터 일본 대형 양판점을 통해 인피니아 LCD TV를 판매한다. 삼성전자도 일본에서 갤럭시S를 출시했다. 지금까진 일본 시장에서 고배를 마시곤 했지만 초엔고 현상을 활용해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우리기업들의 전략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 수출기업들이 엔화가 약세일 때 초엔고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대비하지 않고 긴장을 풀었던 전철을 우리 기업들이 밟지 않기 위해서는 언젠가 올 원화 강세에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허재경기자 ric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