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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센병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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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센병 소멸

입력
2010.10.3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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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래됐고, 전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병으로 한센병 만한 것이 없다. 오랫동안 문둥병, 혹은 순화한다고 해서 나병(癩病)으로 불렀던 그 병이다. 이미 기원전 수백 년부터 인도와 중국 등지에 있었다는 불확실한 기록은 차치하고라도, 구약성경 레위기에 문둥병은 환자의 몸과 의복의 정화(淨化)방법을 주 내용으로 해서 아주 상세하게 기술돼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기원전 1,000년도 훨씬 이전의 시대다. 이후 신약에서는 예수가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치료의 이적을 보인 대상으로 한센병 환자는 여러 차례 언급된다.

■ 한센병은 그냥 질병이 아니다.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도리어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병이다. 발병하면 환자는 보살핌을 받는 대신 철저히 버림받아 어둠 속에 영원히 격리되고 유폐됐다. 혈육마저 연을 끊었다. 이유는 하나, 말초신경과 피부조직이 괴사해 심각하게 변형되는 외양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형(天刑)이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거역한 부정과 죄의 징표로 묘사되고, 중세에 환자가 마녀에 버금가는 혹독한 학대를 받은 까닭이다. 한때 한 국가 전체를 절멸시킬 위기에까지 몰아넣었던 페스트조차도 이토록 잔인하게 다뤄지진 않았다.

■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년 이상이면 기억할 것이다. 예전 어머니에게 들은 가장 무서운 존재는 징을 울려대며 골목을 다니던 굴뚝청소부와 한센병 환자였다. 아무리 그악스러운 아이도 "문둥이가 잡아간다"는 한 마디면 울음을 뚝 그쳤다. 외모에 대한 똑같은 편견에다,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려 아이를 잡아 내장을 꺼내먹는다는 속설까지 널리 퍼져있던 탓이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미당(未堂)이 초기 시 에서 가슴 저미게 묘사한 그대로다.

■ 한센병이 소멸단계라는 보건당국의 진단이 나왔다. 2000년대 들어 신규 환자가 격감, 지난 해엔 5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전염성이 낮은데도 극단적으로 위험시, 죄악시됐던 한센병의 역사는 애꿎은 희생자에 대한 차별과 통제를 통해 나와 집단의 순정함과 우월함을 보상 받아온 비겁함에 다름 아니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은 그래서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으리라. '세상은…사람인 나를 문둥이로 부릅니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센병의 소멸은 또 하나 부끄러운 역사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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