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독특한 위상을 드러낸 자리였다. 중일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개최된 이날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두드러졌다.
먼저 한국은 회의 성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회의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개최 시간을 확정하지 못할 정도로 유동적이었다. 외교소식통은 "이 대통령이 이달 초 브뤼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 기간에 중일 양국 총리에게 개최를 제안했지만 한동안 긍정적 신호가 오지 않았고 이로 인해 외교 실무진들이 두세 차례 더 촉구해야 했다"고 말했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환율 및 희토류 갈등 등으로 꼬일 대로 꼬인 중일 양측은 정상회의 개최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청와대측은 "우리의 중재로 중일 정상간 소통이 이뤄진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을 반영하듯 회의 진행도 순탄치 않았다. 3국 정상회의는 처음으로 자유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 할 말은 하겠다는 중일 양측의 입장 때문이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중국의 대일 희토류 수출 중단을 문제 삼았다. 이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갈등 해소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외신들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 조치를 해제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한국이 깐 '멍석' 위에서 중일이 합의를 본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이날 중일 정상들은 회의 내내 굳은 얼굴을 풀지 않고, 요코하마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상대방 관심 의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 등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두 정상의 대치는 당초 예상만큼이나 심각하지는 않았다. 정상회의에 앞서 중일 외교장관들이 먼저 만나 긴장 수위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일 정상들은 이날 한 목소리로 정상회의 의장을 맡은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다. 원 총리는 "이 대통령이 회의 개최를 제의해 지지했고, 내년 일본이 의장국을 맡은 후에도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 총리는 "회의를 준비한 이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날 정상회의가 온전히 한국의 역할로 인해 성사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희토류 수출 중단 문제와 관련한 미국과 일본의 중국 압박, 후진타오(胡琴濤) 중국 국가주석의 내달 일본 방문 등 여러 요인들이 정상회의 개최 분위기를 유도했다.
하노이=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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