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의 공통점은? 누구나 알고 있듯 정보기술(IT)분야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이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두 명의 천재가 함께 창업했다는 것.
MS는 빌 게이츠와 폴 앨런, 애플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구글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공동 창업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여전히 같이 일하지만 워즈니악과 앨런은 80년대에 각각 애플과 MS를 떠났다. 이후 워즈니악은 컴퓨터 교육, IT기기 개발 등으로 쭉 IT분야에 몸 담았지만, 폴 앨런(57)은 미디어, 부동산,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MS 주식 1억3,800만주를 가진 그는 2010년 기준 자산이 135억달러(약 15조원)에 달하는 세계 37번째 갑부(포브스)기도 하다.
암 발병, 새로운 시작
앨런은 아버지가 워싱턴대 도서관 부관장으로 일했던 중류층 가정에서 자랐다. 사립 고등학교인 레이크사이드스쿨을 다닐 때 2살 아래 후배 빌 게이츠를 처음 알게 됐다. 두 사람은 학교 전산실에서 함께 프로그래밍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앨런은 워싱턴주립대에 들어갔지만 프로그래머로 일하기 위해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둔다. 본인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훗날 게이츠에게 하버드대를 자퇴하라고 설득한 사람도 바로 앨런이다.
앨런과 게이츠가 의기투합하게 된 것은 75년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PC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감지한 두 사람은 이 컴퓨터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언어 ‘베이직’을 개발해 납품했다. MS의 시작이다.
MS 성공의 분수령이 된 것은 80년 IBM과 맺은 PC 프로그램 공급 계약이다. 계약은 맺었지만 아직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했던 이들은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라는 회사가 개발한 QDOS라는 프로그램을 사들여 MS-DOS라는 이름으로 IBM에 공급해 대박을 터트리게 되는데, 이 때 QDOS 구매를 진두지휘 한 사람이 앨런이다.
하지만 앨런은 83년 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에 걸렸다. 몇 달간의 항암치료로 완치됐지만 그는 MS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한 투자회사 ‘벌칸’을 세워 과학, 미디어, 특허 회사 등 40곳이 넘는 분야에 투자한다. 미국 3위의 케이블 TV방송인 차터 커뮤니케이션즈가 그의 소유이고, 2004년 세계 최초로 시험 비행에 성공한 민간 유인우주선 스페이스십원의 투자자도 그다.
스포츠 구단도 3개나 갖고 있다. 미국프로풋볼(NFL) 소속 시애틀 시호크스, 미국프로농구(NBA)의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미국프로축구(MLS)의 시애틀 사운더스 FC가 그의 소유다.
빌 게이츠와 닮은 꼴, 기부왕
“내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활동과 비영리 과학연구에 지원하도록 기부할 것이다.”
앨런은 지난 7월, 사후(死後)에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그가 또 다시 암의 일종인 비(非)호지킨 림프종을 앓고 있다고 알려진 지 8개월 후에 나온 것이다. 이 병은 인체의 면역체계를 형성하는 림프 조직에 생기는 종양으로, 83년 그가 걸렸던 호지킨 림프종보다 치료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변인은 그가 화학요법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쳐 건강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우연의 일치일까. 83년 처음 암이 발병했을 때는 공들여 세운 MS를 떠난다는 쉽지 않았을 결정을 내리더니, 이번에는 전재산 기부라는 결단을 내렸다.
물론 그의 기부 활동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5년 MS 주식이 공개됐을 때 게이츠와 앨런의 지분은 각각 49%, 28%였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지 1년도 채 안돼 MS 주식은 급등했고 둘은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됐다. 이듬해인 86년 앨런은 ‘폴 앨런 가족 재단’을 설립해 건강, 복지, 과학 기술과 관련된 단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94년 처음 재단을 세운 게이츠보다도 빨랐다.
그는 매년 3,000만 달러(약 340억원)를 지원했고, 2007년까지 기부한 금액만 모두 9억 달러(약 1조원)에 이른다.
앨런은 자신을 위해 돈 쓰는 데도 통이 큰 듯하다. ‘갑부들의 필수품’인 대형 요트가 두 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옥토퍼스’(127m)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긴 요트. 그는 자신의 요트에서 유명인들과 큰 파티를 열기도 한다. 록 밴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이런 파티나 자신이 건립한 음악 박물관 EMP의 시상식에서 직접 기타 연주도 한다.
MS라는 거대한 기업을 세우고도 게이츠 만큼 주목 받지 못한 채 병마와 싸워야 했던 앨런의 삶을 측은하게 여길 법도 하다. 그런데 2005년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조사한 ‘미국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인물 25’에서 앨런이 3위로 뽑힌 것(1위는 구글 창업주 페이지와 브린, 2위는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였다). 사람들이 게이츠가 아닌 앨런을 뽑았던 것은, 당시 반(反)독점 소송과 경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게이츠와 달리 앨런은 스포츠사업 등을 하며 자유롭고 여?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정 행복이란 무엇일까.
다음 주에는 일본 최고의 갑부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Uniqlo) 회장을 소개합니다.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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